1922년의 제2차 조선교육령과 신대만교육령에 따라 식민지 조선과 대만에서 보통학교국사와 공학교용 일본역사가 편찬되었다. 같은 시기에 역사교육이 시행된 목적은 조선에서 3·1운동에 따른 문화통치로의 변화가 계기가 되었다. 이 영향을 받아 대만에서도 첫 문관총독을 임명하고 내지연장주의 정책을 시행하였다. 이로써 조선과 대만에서 조선인과 대만인의 동화를 위한 역사교과서가 편찬되었다. 식민지 역사교육의 중요한 방침은 일본역사를 통해 ‘국체의 대요’를 알게 하고 나아가 ‘국민정신’을 기르게 하는 점이 같았다. 대만에서는 일본역사 외에 대만역사를 가르치지 않았으나 조선에서는 일본역사와 함께 약간의 조선사를 가르쳐 일본과 조선의 밀접한 교류, 인종적 근친성을 강조한 점이 달랐다.
보통학교국사와 공학교용 일본역사는 황국사관에 입각하여 인물중심으로 서술한 심상소학국사를 저본으로 삼았다. 두 식민지의 교과서가 천황에게 순종하는 신민을 만들기 위한 목적이 동일했던 것은 근대 천황제 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키는데 활용하는 소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보통학교국사는 조선인의 반발을 무마하고 식민사관에 근거한 철저한 역사교육을 위해 심상소학국사에 ‘조선사’를 첨가했다. 그러나 공학교용 일본역사는 심상소학국사를 저본으로 분량을 줄이면서 대만 고유의 역사를 서술하지 않았다. 대만에서는 조선과 달리 민족사교육에 대한 의식이 약했기 때문이다.
제국 일본의 식민지 교육정책은 교과서를 통해 역사적으로 조선이나 대만에 대한 외세침략을 강조하여 두 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에 역점을 두었다. 이러한 의도를 갖고 일본의 민족적 우월성과 시혜적인 역할을 교육시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