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경찰은 조선에서 위생 관념 보급을 위해 ‘으르고 달래는’ 시책을 폈다. 이 글에서는 달래는 방법이라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활용한 선전 활동 외에 으르는 방법인 강압적 활동을 대상으로 고찰했다. 그것은 폭력적 ‘청결 방법’의 실시, ‘검병적 호구조사’, 그리고 처벌과 강제주사이다.
일제는 청결방법 시행 초기부터 ‘계엄령적’으로 임했다. 그래서 이 청결방법의 시행은 일제 경찰에 의한 폭력 행사 과정이기도 했다. 매년 몇 차례씩 실시되는 청결방법 시행과정에서 헌병과 경관이 조선인 농민에게 구타와 모욕을 가했다. 그래서 조선인들은 청결방법에 대해서도 반감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일제는 또 검병적 호구조사 실시 이유 중의 하나가 조선인의 발병 사실 은폐에 있다고 강변했으나 격리시설에 수용되었을 경우의 두려움이 감추려는 심리의 원인이 되었다. 그리고 오진으로 엉뚱한 약을 처방한 결과 불의의 고통과 비명 오사(誤死)된 사례도 자주 있었다. 그밖에 위생 방해 행위 처벌은 그야말로 신체와 재산에 직접적으로 가해진 폭력이었다. 또 예방주사 접종에서도 강제성이 있었다.
이와 같은 일제 경찰의 강압적 위생 활동은 전염병 발병을 낮추는 데 효과적으로 작용하지도 못했다. 그리하여 1911년부터 1941년 사이 30년 동안 전염병 환자수와 사망자수는 일시적 반전을 제외하고 계속해서 우상향하는 추세를 보였다. 아울러 일제 경찰이 전염병 발병 원인으로 파악했던 조선인의 위생관념 박약은 같은 시기 조선 거주 일본인의 발병률을 볼 때 근거 없는 편견이었다. 그것은 민족성의 문제라기보다는 교육과 경제력의 문제였다.
일제 경찰의 위생활동에서 폭력이 동반되었다. 통치기구 자체가 ‘관존민비’의 전근대적 속성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일상적 폭력을 행사했던 데다가, 민족성 논리에 결부된 민족 차별적 폭력이 중첩되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