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은 신축교안 12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이를 기념하여 여러 행사들이 제주도 내에서 진행되었다. ‘화해’가 주된 담론으로 등장하고 있지 만, 아직도 제주도민 사회와 천주교회 사이엔 서먹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그것은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는 신축교안 당시 제주도 민들이 처했던 상황을 분석한 연구에 비해 천주교회가 처한 상황을 분석한 연구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도 한몫했다고 본다. 이 논문은 그동안 관심 밖에 있었던 신축교안 당시 천주교회가 처한 상황을 돌아보고, 그들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살펴보려고 한다. 이를 통해 도민 사회와 천주교회가 균형 있게 서로를 이해하고, 진정한 화해의 여정을 걸어가는 데 에 밑거름이 되길 기대한다.
천주교회는 18세기 후반부터 약 100여 년 간 국가와 사회로부터 지속적인 박해를 받아왔다. 그런데 상황이 급변했다. 한불조약 이후 선교사들이 치외법권적 지위를 얻게 되었던 것이다. 교회 구성원들은 교회를 보호하기 위 해, 천주교를 전파하기 위해 다소 과격한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안타깝게 도 그러한 천주교회의 태도는 지역 사회와의 충돌을 불러일으켰다. 전국에 서 다수의 교안이 벌어졌다. 이런 배경에서 벌어진 사건이 신축교안이었다. 사실 신축교안 당시 천주교회는 배타적인 시선으로 선교지 문화를 바라보고 있었고, 계속된 박해 속에서 교회 보호를 최우선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물론 그것은 오늘날 천주교회의 입장과는 다르다. 천주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를 계기로 세상을 향해 문을 열어젖혔고, 교회보호 를 넘어 사회의 공동선을 위해 행동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 천주교회는 과거의 일에 대한 성찰과 반성 그 리고 화해의 작업을 진행해왔다. 오늘날 신축교안에 대한 천주교회의 전향적인 태도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도민 사회와 천주교회가 서로에 대해 공감할 수 있다면, 가해자와 피해 자, 영웅과 순교자라는 이분법적인 대립과 대치를 넘어 참된 화해와 상호 인정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