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7년 금이 고려에 형제관계를 요구했으나, 1119년 외교방침을 바꿔 군신관계를 요구하고, 1126년 고려가 금에 칭신상표한 후 양국의 군신관계가 수립되었다. 이후 고려는 금에 사대의 예를 충실하게 이행했다. 비록 고려의 칭신상표보다 16년 늦게 금의 책봉이 이루어졌으나 단지 책봉이 결여되었다는 이유로 그 기간 양국의 군신관계를 부정할 수 없다. 전통시대 동아시아의 외교적 형제관계는 그 주체가 당국 군주로서 실제 세력 격차와 무관하게 형식상 대등한 군주 칭호와 의례를 사용했다는 공통성이 있다. 13세기 초 몽골-고려 화친은 몽골의 세력이 고려를 위압하고 고려 국왕이 스스로 신하를 칭하는 불평등 관계였다. 그러므로 양국관계는 실제·형식적으로 상하가 분명한 군신관계로 이해되어야 한다. 몽골은 전통적으로 주변국과 군주가 군신관계, 황자·신하가 형제관계 맺는 외교방식을 구사했다. 몽골-고려 화친도 그러한 이중적 화친 수립 방식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양국 장군이 맺은 형제관계가 외교관계를 대표하지 못한다. 양국의 화친은 마땅히 군주 간 수립된 군신관계로 이해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