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조선 시대 평양부의 변화와 평안감영을 읍지, 회화식 지도 및 각종 문헌을 통해 고찰한 것이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평양부는 다른 감영과 달리, 처음부터 전속 관아시설을 갖추었고 사행 경유지라는 인문학적 특성으로 다른 도읍과 다른 위상을 지녔다. 따라서 기자와 관련한 유적지를 중요시하였는데, 이는 현재 남아있는 회화식 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둘째,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평양성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졌다. 하지만, 전후복구가 미흡한 상태였기 때문에 평양성의 규모를 줄여가며 방어에 주력하였다. 셋째, 17세기 이후 사회가 안정화되고 무역이 발달하면서 평양부의 재정이 크게 확보되었다. 이에 숙종은 평양성과 평양감영을 체계적으로 정비하였다. 고도가 높은 북성과 그 아래로 감영와 창고, 중간 부분에 중영과 객관, 맨 남쪽에 이아와 창고시설을 두어 객관을 중심으로 감영과 이아를 두었다. 대동관을 중심으로 대동문까지 대로가 이어지는 도시구조는 다른 읍치와 같다.
넷째, 평안감영은 정문인 포정문-내삼문-선화당의 동선을 중심축으로 정문 주변에 군사시설을 선화당 좌우로 행정업무시설을 뒤로는 내아를 두었다. 그리고 감영의 외곽에는 후원과 누정을 배치하였다. 다섯째, 평안감영은 중심건물인 선화당에 이르는 동선이 세 개의 문을 통하지 않고 포정문과 내삼문만으로 선화당에 이른다. 그리고 다른 감영보다 감사의 공간이 다양하고 누정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