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토쿄국립박물관(東京國立博物館)에 소장되어 있는 양해(梁楷, 13세기 초에 활동)의 〈이백행음도(李白行吟圖)〉는 시를 읊으며 천천히 걸어가는 이백(李 白, 701-762)을 감필체(減筆體)로 그린 작품이다. 〈이백행음도〉는 현존하는 양해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그림이다. 그런데 〈이백행음도〉의 주제가 과연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연구된 바가 없다. 본래 〈이백행음도〉에는 그림 제목이 적혀 있지 않다. 중국의 회화 작품 대부분에는 제목이 쓰여 있지 않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개별 그림의 제목은 모두 후대에 편의적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이백행음도〉도 마찬가지로 후대에 붙여진 그림 제목이다. 현재 남아 있는 이백을 주제로 한 대부분의 작품들은 술을 마시고 있는 또는 술에 취한 이백을 그린 그림들이다. 이백을 주제로 한 그림의 화제(畵題) 중 술에 취한 상태에서 시를 읊는 모습인 ‘취음(醉吟)’, 즉 ‘이백취음(李白醉吟)’은 존재한다. 그러나 ‘이백행음(李白行吟)’은 존재하지 않는다. 토쿄국립박물관에는 에도시대(江戶時代, 1615-1868)에 카노파(狩野派) 화가가 임모(臨摹)한 〈양해이백행음도모본(梁楷李白行吟圖模本)〉과 〈양해동방삭도모본(梁楷東方朔圖模本)〉이 소장되어 있다. 이 두 그림은 본래 대폭(對幅)으로 한 세트를 이루었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동방삭(東方朔, 기원전 154-93)의 상대가 되는 인물은 이백이었을까? 동방삭과 이백은 역사적으로 아무런 연관이 없다. 동방삭은 굴원(屈原, 대략 기원전 343년경-277년경)의 추종자였다. 그는 굴원과 마찬가지로 충직(忠直)한 관료로 서한(西漢)의 무제(武帝, 재위 기원전 141–87)에게 조정의 시책에 대해 간언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정치적으로 불우했던 인물이다. 동방삭은 『초사(楚辭)』에 들어 있는 시인 「칠간(七諫)」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칠간」은 굴원의 『이소(離騷)』를 모델로 한 시이다. 굴원은 ‘물가를 거닐면서 읊조리는(行吟澤畔)’ 인물로 그림과 판화에 주로 그려졌다. 따라서 〈이백행음도〉에 그려진 인물은 이백이라기보다는 굴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