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에서는 춘추전국시대 붕우 관계가 공적 차원에서 어떻게 인식되고 규정되었는지를 당시의 벗 담론을 근거로 규명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먼저 벗함의 기반, 곧 무엇을 기반으로 벗이 되는가에 관한 춘추전국 당시의 관념을 살펴보았다. 다음으로는 춘추전국은 윤리학적 질서와 체계가 제자백가 간 치열한 경쟁 속에 통일제국의 그것을 향해 구축되어 가던 시대였고 이 과정에서 벗 윤리가 풍부하게 다루어졌음에 주목하여 그러한 윤리 담론 가운데 벗의 실존적, 사회적 위상에 대한 관념을 추출할 수 있는 논의를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벗의 자리가 어떻게 사유되어 왔는지, 그 실제를 짚어보았고, 그 결론으로 윤리학적 차원에서 벗의 자리가 기축윤리와 아닌 것의 경계, 혈연과 비혈연의 경계, 공과 사의 경계에 마련되었음을 논증하였다. 이 과정에서 춘추전국시대 벗은 ‘사적-개인적이자 수평적 관계’라는 차원과 ‘공적-사회적 관계이자 수평적 관계’라는 차원 모두에서 사유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전자의 차원에서 사유될 때도 절대 다수가 ‘군자 윤리학’이라는 자장에서 벗어나지 않았음을 감안한다면, 춘추전국시대의 벗 담론은 후자를 기본값으로 하여 수행됐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벗 윤리가 오륜의 한 항목으로 편입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