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許筠, 1569~1618)이 1593년에 집필한 『학산초담(鶴山樵談)』은 조선 중기 시단(詩壇)의 동향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시화(詩話) 자료이다. 이 『학산초담』은 허균의 저작으로 일찍이 알려졌고, 책의 내용과 성격에 대한 분석도 이미 제출되었다. 그러나 보다 많은 시화 자료가 발굴된 현시점에서 『학산초담』의 성격과 위상은 재론될 필요가 있으며, 텍스트 분석에 앞선 문헌 검토도 요청된다. 이 글은 현전하는 『학산초담』의 여러 이본들을 재확인하면서 계열 정리를 시도하고, 이를 통해 각 이본의 위치와 성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자 하였다.
『학산초담』은 오랜 기간 허균이 편집했던 원본(原本) 계열의 이본만이 존재하다가, 김려(金鑢, 1766~1821)가 『학산초담』의 오자를 수정하고 주석을 붙여 『한고관외사(寒臯觀外史)』에 수록하면서, 원본과는 다른 편집본이 등장하게 되었다. 김려의 편집본을 포함한 후대본 계열은 모두 3종이다. 하버드대 소장 『한고관외사』에 수록된 『학산초담』을 장서각 소장 『한고관외사』가 그대로 필사하였고, 이 장서각본을 토대로 영남대학교 소장 『패림(稗林)』에 있는 『학산초담』이 만들어졌다. 3종 이본을 대비한 결과, 하버드대 소장 『한고관외사』가 선행본이자 완성도 높은 선본임을 알 수 있었다.
이어서 김려의 작업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원본 계열의 이본도 살펴보았다. 원본 계열의 이본은 성균관대 소장 『청구패설(靑丘稗說)』에 수록된 『학산초담』, 장서각 소장 『청강소설(淸江小說)』에 묶인 『학산초담』과 규장각에 소장된 『학산초담초(鶴山樵談抄)』 3종을 확인하였다. 이 3종의 이본을 대비하여, 『청강소설』합본이 가장 완성도가 높은 이본이자 원본에 가까운 모습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앞으로의 『학산초담』 연구는 원본 계열의 이본 중에서 장서각 소장 『청강소설』에 수록된 『학산초담』을 기준으로 하되, 김려가 오자를 수정하고 주석을 붙였던 하버드대 소장 『한고관외사』의 『학산초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