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翰苑』은 기원 660년 張楚金(?~689)이 찬술하고, 雍公叡가 注를 붙인 類書의 抄寫本이다. 문헌으로만 전하던 『한원』의 殘卷인 「蕃夷部」가 발견된 지도 한 세기가 넘었다. 『한원』 번이부는 중국 주변 15개 이민족을 서술 대상으로 삼았다. 이 가운데 『한원』이 편찬된 660년경 존재한 이민족은 高句麗ㆍ新羅ㆍ百濟ㆍ倭國뿐이었다. 이 때문에 『翰苑』 번이부는 6~7세기 삼국시대 후기의 ‘東夷傳’이라 부를 만하다.
현재의 『한원』은 필사본으로 전해져 오는 동안 많은 오ㆍ탈자와 衍文, 改文이 유난히 많아 이용에 주의를 요하는 자료로 알려져 왔다. 1922년 처음 영인본이 간행된 이래 일본과 중국에서 적지 않은 교감ㆍ역주, 그리고 관련 연구가 지속되고 있다. 『한원』 번이부 연구의 최대 관건은 신뢰할만한 교감문이 없었기 때문이다. 2018년 기왕의 교감ㆍ역주를 종합한 『譯註 翰苑』 이 간행되면서 향후 연구의 토대가 만들어 졌다.
그 동안 한국학계의 『한원』 번이부 연구는 대체로 지금 전하지 않는 기록만을 고구려ㆍ백제ㆍ신라 등 해당 시대사 연구에 이용하는 형태였다. 『한원』 번이부 전체의 구성과 서술방식, 大 字 正文과 注文과의 관계, 주문의 구성과 기재방식 등 종합적인 분석은 취약하였다. 본고는 『譯註 翰苑』의 출간을 계기로 본격적인 연구에 필요한 문헌적 연구의 여러 문제를 살펴본 것이다.
특히 隋唐이래 적대적 관계를 유지해 온 고구려와 백제에 대해서는 침공 시 주요 거점과 요새, 도로 등 지형지물에 대한 서술이 중심이 되어 있다. 인용한 史書도 대부분 지리와 사신의 첩보 활동에서 수집한 자료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를 통해 『한원』에 고구려ㆍ백제ㆍ신라 중심의 蕃夷部 를 설정한 것은 660년 당시 동이사회에 대한 실제적인 지식과 정보를 관리 지망생인 童蒙의 학습서로 만들어 졌다는 점을 강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