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헤이안시대 중기에 활동한 가인 노인의 가집인 『노인법사집』에, 카와라인에서 안포법사의 딸을 대신하여 지은 노래가 한 수 남아 있는 것에 착안하여, 노인이 어떻게 카와라인을 접하고, 그곳에서 어떠한 영향을 받았으며, 그것이 가인으로서 어떻게 발현되었는가를 고찰한 것이다.
카와라인은, 사가천황의 아들인 카와라사다이진 미나모토노토오루가 카모가와 강변 에 세운 저택이다. 광대한 토지에 미치노쿠의 우타마쿠라를 모방한 정원이 유명했으나, 토오루의 사후에는 쇠퇴하여, 자손인 안포법사가 머무른 시기에는 이미 황폐한 상태였다. 그러나, 후지와라씨 주도하의 귀족사회에서 밀려난 문인이나 가인들은 황폐한 그 풍경으로부터 미의식을 찾아내, 그 모임으로부터 이른바 「카와라인문화권」이 형성되었다.
노인은, 자신의 가도상의 스승인 후지와라노나가요시나, 선배가인인 미나모토노미치 나리, 오오에노요시토키의 영향으로 카와라인에 출입하기 시작하여, 그 문화권을 접했으리라 생각된다. 나가요시, 미치나리, 요시토키는 모두 『노인법사집』에 그 이름이 보이며, 시센슈인 『겐겐슈』에서도 중시된 가인으로, 카와라인의 주인인 안포법사의 가집인 『안포법사집』에도 그 이름이 보이기 때문이다.
젊은 날의 노인은 카와라인에서 『코킨슈』에서 『슈이슈』까지의 전통적인 와카의 표현 방법을 충실히 익히는 동시에, 독자적인 영가방법을 목표로 절차탁마했으리라 생각된다. 『노인법사집』 첫 부분의 정수가군에는 그것이 잘 드러나 있다. 동시에, 카와라인문화권에서 유행한 표현도 적극적으로 수용하려고 했는데, 가어 「하나노미야코」를 읊은 노래가 『노인법사집』 『겐겐슈』에 다수 보이는 것이 좋은 예이다. 영가방법 뿐만 아니라, 삶의 방식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되는데, 두 번에 걸친 미치노쿠를 향한 여행이 그것이다. 미치노쿠를 본딴 카와라인의 정원을 노인이 실제로 볼 수는 없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호기심을 자극하였으리라 생각되며, 『노인우타마쿠라』는 그 과정에서 생겨난 가학서일 것이다.
이처럼, 노인과 카와라인의 접점을 나타내는 것은 『노인법사집』의 수의 노래뿐이지만, 작품의 내용을 분석하면, 카와라인이 여기저기 짙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노인은 『슈이슈』와 『고슈이슈』를 잇는 가교 역할을 충실히 담당하고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