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법」은 공연(예술)의 제반 조건과 임계에 관여하는 제도적 기초지만, 이에 관한 이해도는 그다지 높지 않다. 특히 「공연법」의 제정에 관해서는 별다른 의문을 표하지 않는다. 비로소 식민지법령이 폐기되고 신법이 ‘국가’의 법률로 제정되었으나, 식민지 유제가 법리적 기초를 이루고 이를 입법한 주체가 다름 아닌 군정 권력이었다는 점에서, 「공연법」의 제정은 ‘사건’이라 할 만하다. 이 연구는 입법 주체의 기획에 주목하고, 식민지 유산이 탈식민-국가체제의 법률에 안착하여 냉전 문화의 일부로 구성되는 맥락을 살피고자 했다. 이는 다음 세 가지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군정 권력의 신속한 입법 과정은 식민지 유제와 이를 떠받치는 관행을 내면화하지 않았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일이다. 이 연속성은 입법 주체의 성격이 준/전시 ‘군정’ 권력인 데서 비롯하고, 이때 ‘법’이란 현재의 권력이 정당한 것이라고 믿게 하는, 지배를 위한 점령자의 언어임을 의미한다. 둘째, 「공연법」이 이어받은 식민지 유제는 공연성을 근거로 한 통제의 일원화, 공연장소의 통제, 인적 통제, 검열제도 등이며, 이것들은 공보 관점에서 유용한 ‘공연성의 통제’를 목적으로 선택된 것이다. 셋째, 행정입법의 특별한 지위다. 한편으로 식민지법령의 유령화로 인한 법률의 공백 상태를 메우면서 「공연법」의 법리를 구성하는 데 기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식민지 시대와 단층을 이루는 냉전적 질서화와 국가체제의 형성에 요구되는 새로운 규범의 구성과 집행을 담당한 것이다. 「공연법」을 탄생시킨 이와 같은 맥락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군정 권력은 과거의 법령을 폐지하고 ‘새로운’ 법을 창조하여 이 법을 ‘신앙’으로 만든 입법 주체이며, 이 새로운 신앙의 상상력은 식민지시기에 대한 향수에서 유래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념이 격화된 해방 8년 또는 ‘무능한’ 이승만 정부와 ‘무질서한’ 4・19의 공간에서 잃어버렸다고 상상한 신념의 회복이자, 권력을 정당화하는 원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