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1950년대 후반기를 중심으로 서울 지역의 극장공간이 재편되는 구체적인 양상을 살펴보고 이러한 변화를 추동하였던 산업적 역동성을 논의하고자 한다. 극장 연구에 있어 산업적 측면에 관한 연구는 그다지 활발하지 않은 데 그것은 기존 한국영화사 연구가 텍스트 중심으로 진행되었으며 또한 극장산업 관련 자료에 대한 접근이 용이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글은 1950년대 십 년도 채 되지 않는 시기에 극적으로 전환된 한국영화산업의 발전을 조망하면서 극장을 통해 이러한 변화가 가진 의미를 산업적 관점에서 고찰해보고자 한다. 본 연구는 크게 두 가지 점에 주목한다. 하나는 1950년대 중반부터 극장의 기존 경영진이 외화수입업이나 영화제작업을 통해 자본을 구축한 새로운 인력에 의해 대체되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이러한 경영진의 교체 과정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극장이 변화하였고 새로운 극장문화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 변화는 우선 극장이 공연이 배제된 영화전문관이 되었던 것과 그 다음으로 한국영화전용관과 외국영화전용관으로 다시 분화되었다는 것이다.
우선 1950년대 중반 서울 개봉관에서 일어난 중요한 변화는 공연이 사라지고 영화전용관으로 변모한 것이었다. 이 과정은 경제력이 부족했던 기존 경영인들이 외화수입업자 등 재력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인력으로 교체되었던 상황과 함께 일어났다. 그리고 외화수입이 증가하면서 영화수급이 원활해진 것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주요한 외화수입사를 기반으로 한 단성사와 수도극장이 영화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었던 반면 외화수입사와의 관계가 견실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외화의 수급이 원할하지 못했던 국도극장은 경영난을 겪고 결국 1957년 극장주가 바뀌었다. 그리고 계속 외화의 공급이 타 극장보다 힘든 상황에서 가장 먼저 한국영화전용관으로 이행하였다.
두 번째로 큰 변화가 일어난 시기는 1950년대 후반기이다. 서울에는 대형개봉관이 3곳이나 신축되었고 중형규모의 극장도 늘어나면서 다시 한국영화전용관과 외국영화전용관으로 극장이 재편되었다. 경영난을 겪고 있었던 국도극장이 가장 먼저 한국영화전용관이 되었고 지나친 사업 확장으로 경영난에 봉착한 수도극장도 그 뒤를 이었다. 신축 극장들 역시 국산영화전용관과 외화전용관으로 나뉘졌는데 가장 큰 외화수입사인 세기상사가 경영권을 매입한 대한극장이 지속해서 외화관으로 명성을 얻은 반면 상대적으로 원활하게 외화를 수급할 수 없었던 명보극장은 1959년 한국영화전용관이 되었다. 국제극장은 1958년부터 한국영화의 선전에 가장 많은 혜택을 본 영화관으로 선민영화사를 자회사로 삼아 한국영화전용관이 되었다.
이처럼 1950년대 후반기에 일어난 극장의 변화들은 가장 직접적으로 외화수입정책 및 외화수입사의 산업적 변동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이에 대한 더 세밀한 고찰이 요구되지만 현재 한국영화사 연구에서 해당시기의 제작사 및 배급사, 외화수입사에 대한 연구가 진행된 바가 거의 없고 해당 시기의 관공서 자료들 및 해당 산업 내부 자료 역시 접근이 쉽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한국영화사 논의에 있어 이러한 산업적 변화는 더 폭넓은 시선으로 다시 논구되어야 함을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