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시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였던 백남운은 해방 이후 조선학술원을 설립하고 경성대학 법문학부 교수, 민족문화연구소 소장, 조선교육심의회 위원 등을 역임하면서 학술과 교육계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이와 함께 좌익계열 정당(신민당‧사회노동당‧근로인민당)에서 정치 활동을 벌이다가 월북하여 1948년 9월 북한의 교육상(교육성의 장관)이 되었다. 1956년 1월 교육상을 물러난 백남운은 과학원의 원장으로 취임하여 북한 학술계의 지도적인 활동을 이어간다. 『조선사회경제사』(1933)에서는 아시아적 생산양식 문제를 다루지 못했지만, 해방 직후 「조선 역사학의 과학적 방법론」(1946)에서는 노예제사회(삼국) 이전에 ‘아시아적 단계(부여와 삼한)’를 설정하여 시대구분을 시도하였다. 이후 『조선력사』(1951)에서는 구체적으로 ‘아시아적 단계’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고대 노예제사회설에 기반한 고대사 인식을 확장시켰다. 백남운의 한국사 체계와 인식은 한국전쟁 이후 간행된 역사교과서에 대부분 반영되어 서술되었지만, 고대와 중세의 시대구분 논쟁이 정리되는 1960년대 이후에는 삼국시대 봉건사회설에 입각한 교과서 서술이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