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는 유교를 국정교학으로 삼고 국가를 유지하는 정치이념으로 파악했고, 유교에서 제시하는 정치사상을 활용하여 국가의 운영 원리와 운영제도를 마련하였다.
세종은 인간의 선한 본성을 전제로 한 유학의 교화론을 제시하였다. 그는 인간의 절대선인 天性을 전제하는 가운데 스스로 새롭게 하는 이치를 강조하여 쉽게 보고 느껴 분발 하도록 하였다.
조선왕조는 인정에 기반한 교화 특히 문자를 활용한 교화책을 제시하였다. 처음에는 한문으로 된 『농상집요』와 『대명률』을 이두로 번역하도록 하였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창제하여 백성이 쉽게 쓸 수 있는 문자를 만들었다. 백성은 문자 생활을 통하여 자신의 생각과 사상을 체계화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양반 지배층은 한문에 익숙해 있어서 훈민정음을 외면하였다. 훈민정음은 국가의 공용문자가 되지 못하였고, 사적인 개인적인 차원에서 사용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훈민정음 창제는 백성들이 문자 생활을 통하여 논리적으로 사고하며, 도덕적 자각 능력을 함양하는 길을 열었다. 그리고 백성의 자신의 생각을 지배층에게 전달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