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발해 상경성 외성 성벽 위에 남아있는 흔적을 근거로 발해 시기 성벽에서의 여장 존재와 그 모습을 추론해 보고자 했다. 연구의 진행 순서로 제Ⅱ장에서는 여장의 개념과 조영기술 발전을 조선시대 수원화성과 남한산성을 본보기로 정리해 보았다. 여장의 조영방법을 고찰해 봄으로써 그 이전 시기와는 어떠한 차이가 있으며, 발전된 기술은 어떠한 것이 있는지를 파악해 보았다. 제Ⅲ장에서는 고구려와 고려 시기 성곽 가운데 여장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유적을 정리하여 발해와 비교하는 기준틀을 설정하였다. 제Ⅳ장에서는 상경성 외성의 규모와 구조방법을 기존 문헌을 통해 파악하고, 이어 연구자가 확인한 여장 흔적을 소개하였다. 제Ⅴ 장에서는 각 시기별로 확인된 여장의 모습을 통해 발해 상경성 외성 성벽 위에는 어떻게 생긴 여장이 존재했을까를 추론하여 보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얻어진 결과 발해 상경성 외성 성벽 위에는 폭 1m 내외, 높이 1.3m 정도의 여장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여장 길이는 타와 타구로 구별된 선진화된 여장이 아니라 고구려나 고려의 경우와 같이 일정 거리를 연속적으로 유지하였을 것이다. 또한 재료가 벽돌이 아닌 석재로 여장을 쌓았으므로 사혈과 같은 구멍을 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발해 상경성의 외성 성벽은 지금의 모습과 높이가 성벽의 마지막이 아니라 체성벽 위에 여장까지 군사적 방어력을 충분히 갖춘 성곽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