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의 목적은 첫째, 인간 김우진의 죽음을 소급해서 읽는 방식이 아닌 독립된 읽기의 대상으로서 작가 김우진의 죽음 개념을 파악하고 둘째, 김우진의 대사회적 글쓰기와 대내면적 글쓰기의 간극을 설명하고 좁히는 데에 있었다. 그러기 위하여 블랑쇼의 ‘바깥’ 개념에 주로 기대어 작가의 성향과 죽음이라는 주제가 전면화되어 있는 작품인 「난파」와 그 연장선상에서 「산돼지」를 논하였다. 논의의 전개에 따라 일기문과 편지글 역시 작가의 의식을 텍스트화(化)한 부분이 있다고 판단하고 논의의 근거로 포함하였다. 이때 주목하는 것은 김우진의 창작품이 글쓰기라는 능동적인 행위를 통한 결과물이라는 점이었다. 기존 논의에서는 김우진의 죽음 개념을 생명력 개념의 연장선상 혹은 한가지로 파악하는 경우가 잦아, 소통과 공동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김우진 희곡을 읽고자 하였다. 김우진 작품에 나타나는 죽음은 죽음 이후 남아 있는 자를 남아 있는 자로 새로이 구성하고 의미를 지니게 한다. 또한 비평가로서의 김우진은 대(對)사회적 발화를 하는 반면 작가 김우진은 시와 희곡에서 일기와 크게 다르지 않은 추상성과 관념성을 보여주며 대내면적 발화를 하는데, 그것을 블랑쇼의 개념을 빌려와 ‘바깥’으로의 향함이라고 보고 나아가 공동체에의 열림의 단초를 보이고 있다고 판단하였다. 여기에서 말하는 공동체는 죽음 이후, 애도와 실존에의 의심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죽음 이후의 인간과 소통이라는 주제어로 「난파」와 「산돼지」를 살필 때 작가의 작품에 연속성이 생기며, 바깥의 경험을 통하여 인물이 자신의 위치와 역사성을 인식하고 세게 변혁의 시작점을 파악하는 방식으로 죽음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았다. 결과적으로 김우진의 죽음에 대하여 많은 논자들이 지적한 바 생명력의 다른 이름이라고 하기보다는, 그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기능하며 인물을 위치짓고 공동체에의 열림에 대비하는 소통의 흔적이라는 것으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려 하였다. 이때의 공동체는 비단 김우진과 그 시대를 공유하는 조선인 공동체에 국한되지 않고, 인간이 죽음을 맞는 존재인 한 구성될 수밖에 없는 예비된 공동체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김우진 희곡을 2020년대에 읽을 의의가 생겨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