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영의 작품은 다양한 경로와 매체를 통해 조선에 전해져 조선의 화단과 문화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실제로 조선에 유입된 구영의 관서가 있는 작품은 얼마나 충실하게 구영의 화풍을 반영하고 있는 것일까? 조선시대 사람들이 생각한 구영의 이미지와 화풍은 어떤 층위의 작품을 토대로 형성되었으며, 그들의 이해가 실상과는 어떤 차이가 있으며 당시 문화계와 화단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본 논문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필자는 문헌기록을 상세히 검토하여 조선시대 문인들이 감상했던 구영의 작품과 그들이 그려낸 ‘구영상(仇英像)’을 재구성하고 조선에 유입된 구영 회화의 다양한 면모를 제시하였다. 조선에 전해진 구영의 작품은 양적, 질적인 측면에서 중국에서 유통되던 구영의 작품과 차이를 보이며 실상과는 다른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즉 중국에서 보는 ‘회화사’나 ‘구영의 화풍’은 조선에서 이해한 ‘회화사’와 ‘구영의 화풍’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이는 비단 구영의 작품뿐 아니라 조선에 전해진 중국 회화의 질과 양에 관한 문제와도 관련되어 있으며, 국내에서의 중국 회화 수집에 관한 경향과 그 지식의 형성 과정과도 연관되어 있다. 구영 그림의 동전(東傳)과 그의 화풍에 대한 연구는 중국화의 조선 유입과 그 경로, 중국 서화 수장과 감상이라는 문제뿐 아니라, 작품의 진위 여부, 모사와 복제, 소주 지방에서 이루어진 상업 회화의 제작과 유통, 소주편과 휘주 판화의 동아시아적 확산이라는 동아시아 문화교류 현상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더 나아가 조선에 전래된 구영 그림과 그의 화풍에 대한 검토는 회화, 소설 삽화, 판화 등 매체에 따른 양식의 변화와 작품을 통한 화풍과 도상의 전래 문제, 새로운 화제의 전래와 도상의 선택적 변용 과정, 명대 소주의 정원과 문인 문화에 대한 조선시대 문인들의 관심을 규명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연구 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