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유선시는 고려시기부터 조선 초기까지 일부 작자들에 의해 간헐적으로 창작되다가 조선 중기인 16~7세기 무렵 전성기를 맞이한다. 이 시기 유선시의 창작이 활성화된 이유로 정치적 혼란과 전란이라는 외적 요인과 그에 따른 작자 계층의 의식 변화, 학당풍의 진작과 도교에 대한 관심의 증폭, 서인의 몰락 등이 거론된다.
그런데 조선 후기 특히 18세기 이후로 오면서 한시 속의 신선세계는 점차 변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전 시기까지 유지되어 왔던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이상세계에서 점차 世俗化되는 모습을 보인다. 조선 후기의 한시에서도 이전 시기와 같은 유형의 유선시를 볼 수 있지만, 이전과 다른 모습을 지니는 작품들을 상당수 찾을 수 있다. 이런 변화의 원인을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조선 후기의 유선시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은 분명 이전 시기까지와는 다른 모습이다.
조선 후기 새로운 유형의 유선시가 등장하게 된 이유를 당풍과 도교에 대한 관심의 쇠퇴와 산문의 대두, 시대정신과 문학사조‧작가의식의 변화로 보기도 하지만 이렇게 단언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당풍과 도교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인물들에게서 이전 시기와 같은 유형의 유선시를 찾을 수 있고, 조선 후기 당대 새롭게 대두된 산문에서도 선계에 대한 동경과 비판이라는 상반된 의식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으며, 시대정신과 문학사조‧작가의식의 변화는 유선시 뿐만 아니라 모든 문학 양식의 변화를 유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조선 후기 유선시의 성격 변화는 시대정신과 문학사조‧작가의식의 변화 때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규정할 경우 새로운 유형의 유선시는 작자 개개인의 선택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시대정신과 문학사조에 작가의식이 영향 받을 수는 있지만, 반드시 시대정신이나 문학사조와 작가의식이 함께 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작가의식의 형성에 시대정신이나 문학사조가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대정신과 문학사조가 대두된 조선 후기의 유선시는 이전과 다른 양상을 지닐 가능성이 적지 않다.
조선 후기에 등장한 실질적이고 이성적인 현실 중심의 새로운 시대정신과 문학사조는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분석을 바탕으로 감성과 낭만에 가득한 신선의 세계를 현실세계로 끌어내렸다. 이와 같은 변화는 시대의 추세로 볼 때 타당하고 또 당연한 것이지만 작자와 함께 독자들이 문학 특히 시를 통해 잠시라도 현실을 벗어나 환상의 세계를 거닐 수 있는 방법의 하나를 없애 버렸다는 점에서 아쉬움 역시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