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김영팔의 〈곱장칼〉을 형평운동의 담론적 맥락 속에서 새롭게 읽어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백정들의 인정투쟁을 다룬 작품인 〈곱장칼은〉 김영팔의 계급의식이 가장 충실하게 반영된 1920년대의 대표적 프로희곡으로 평가되어왔다. 이러한 평가는 백정을 곧 프롤레타리아의 대표적 표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당대의 형평운동을 분석해 보면, 형평사는 균질적 집단이라 보기 어려웠고, 프롤레타리아의 중심 세력이었던 노동자와 농민들은 백정들과 끊임없이 충돌하던 형국이었다. 동시에 형평운동 내부에서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내발적 지향이 싹트고, 사회주의 운동단체들 역시 형평운동과 연대하려는 움직임을 강하게 드러냄에 따라 백정을 프롤레타리아의 울타리 속에 편입시키는 일은 주요한 과제로 부상할 수 있었다. 사상적 투철성에 의심을 받으며 조직 내부의 반발에 직면했던 김영팔에게 있어 백정 문제의 계급문학적 재현은 매력적인 창작의 소재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취한 역사극의 방식은 백정을 둘러싼 실재적 갈등 양상을 모호한 과거의 시공간 속에서 낭만화하고 봉합하는 데 그치고 있다는 점에서 뚜렷한 한계를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