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모의 글은 난해하고 생경하다. 글의 행간에서 사상적 원천을 헤아리기 곤란할 뿐만 아니라, 아주 독특한 음독과 조어 방식으로 인해 일종의 난독 경험을 피할 수 없다. 그럼에도 함석헌에게 이어진 생명주의의 영향을 다시 거슬러 류영모를 재독하는 것은 한국 토착지성의 계보와 그 의미를 상론하는 데에 불가피한 쟁점이다. 숨 사상의 담론적 맥락을 되짚어 가면, 류영모의 영성론이 다이쇼 생명주의 담론의 자장 속에서 육성된 정신의 한 결산임을 부정하기 힘들다. 다른 한편, 숨에 관해 범신론적 신비주의 차원에서 논하는 것과 지극히 계량화된 형태로 논하는 것 사이에서 류영모는 어떤 이율배반을 느끼지 않는다. 한 번의 숨을 기본 단위로 해서 지구 대기의 순환을 상론하는 것도, 평생에 걸쳐 날수를 헤아리는 것도 물론 류영모 개인의 취향이기도 하겠지만, 달리 보면 영성이 계량화되는 형태로 스스로를 입증하는 방식, 즉 ‘물화된 영성’의 방증이라 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