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4년 대방군 멸망 이후의 추이를 고찰하였다. 요서 지역으로 옮겨간 대방군과 멸망한 자리에 남겨진 대방군에 대한 문제이다. 대방군에 살던 주민들은 낙랑군에 뒤이어 4세기 전반 요서지방으로 옮겨갔다. 그 곳에 대방군이 새롭게 설치되었다. 이후 대방군은 전연·후연·북연시대까지 존속하였다. 북위시대에 들어와 대방군은 폐지되고 대방현이 설치되었다. 대방현은 영주 낙량군 소속(요령성 조양시 지역)이었다. 이후에는 이주해가서 남영주 영구군 소속(현 하북성 보정시 지역)으로 존재하였다. 대방현은 명목상으로나 존재할 정도로 규모가 미미한 존재에 불과하였다. 대방현은 556년 북제 시대에 이르러 행정구역 개편으로 역사에서 사라졌다.
고구려는 대방군을 멸망시킨 이후 즉시 직접적인 행정지배를 추진하지 않았다. 이 지역에는 잔존세력이 존재하고 있었다. 일부는 독자세력을 형성하면서 존재하다가 고구려에 흡수되었다. 그 세력은 지역의 특수성에 바탕을 두고서 벽돌무덤이라는 묘제를 채용하였으며, 일부 세력가는 대방태수와 같은 관직을 사용하기도 했다. 한편 대방군은 멸망했지만, 이후 역사의 전개과정에서 대방군 관련 인식이 기억되고, 계승되었다. 대방군 관련 관직과 작위 명칭이 고구려, 백제, 고려시대까지 사용되었다. 한반도 중북부지역이라는 대방군의 위치인식은 이후 고구려, 백제, 신라시대까지 계승되었다. 한편 전라도 남원지역의 과거 역사에 대방군을 끌어다가 편입하려는 시도가 고려시대 이후에 나타났다. 물론 잘못된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요서 지역으로 이주해 살다가 중원의 역사 속에 용해된 대방·낙랑군 주민은 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관점에서 해석할 필요가 있다. 이 땅에 남겨진 대방군은 그 계승인식이 후대까지 이어지다가 우리 역사의 발전과정 속에 흡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