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단색화 이후 나타난 한국의 극사실 회화를 동시대 일본의 트릭아트와 연결하여 고찰함으로써 그 미술사적 의의를 재정의한다. 최근 이시코 준조(石子順造) 및 그가 이끈 겐쇼쿠(幻觸) 그룹과 모노하의 영향관계가 밝혀지면서, 트릭아트는 모노하와 이우환을 경유하면서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단색화와 극사실 회화 모두에 영향을 주었다고 추정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 극사실 회화는 이우환을 통해 서구 팝아트와 일본의 트릭아트의 문제의식이 소개된 이후, 근대비판에 기반한 동시대의 문제의식을 다다와 초현실주의라는 기왕의 사조에서 나타났던 실재와 이미지라는 단순한 이분법으로 소화한 후, 동시대의 하이퍼리얼리즘 기법을 전통 초상화 기법의 논리로 수용해서 대처한 것으로 다소 단순하게 도식화시킬 수 있다. 그 점에서 극사실 회화는 선진국의 사회발전단계에 도달하지 못한 후발국에서 선진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흔히 나타나는 혼성성을 다양한 수준과 방식으로 드러낸다.
동일한 동시대의 문제의식에 대해서 일본은 모노하를 통해 회화, 즉 이미지를 벗어난 실재의 대면을 추구했다. 그에 반해 한국의 단색화는 실재의 재현을 회화의 단순반복적인 행위를 통해서 물아일체라는 세계의 이치를 깨닫는 것으로, 그리고 극사실 회화는 격물치지(格物致知)라는 사물의 이치를 구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실행했다. 이와 같은 전통적 사유 속에서 실재의 구현은 이치에 대한 깨달음이었으므로 이들은 서구나 일본과 같이 외적 사물의 제시로 나갈 필요를 느끼지 못했고, 회화면 위에 머물렀다. 그런데 단색화와 극사실화 모두 1970년대 근대화과정에 있어서의 근면한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자신의 작업에서 내면화하고 있었다. 이렇게 표현행위를 주제화하면서, 당시 우리 화가들은 소비사회에 진입한 서구와 일본의 동시대 미술의 문제의식을 공감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실재란, 회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모더니즘의 가장 근원적인 물음에 도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