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새로 확인된 두 점의 묘지(墓誌)를 통해 요초(遼初) 최대 공신(功臣)인 발해인 고모한의 초기 행적에 대한 의문점을 해결하고, 그의 후손들의 행적을 연구하여 가계도를 복원한 글이다. 그 결과 그의 고려 내투와 고려 태조 왕건의 딸과 혼인했다는 『遼史』의 기록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고모한 사후 후손 중 일부는 서경도(西京道)-삭주(朔州)로 이주(移住)하여 가계를 이어간 사실을 확인했는데, 이는 요초 발해인에 대한 강제 천사(遷徙)를 제외하면, 발해인 가계가 서경도로 이주해 간 최초의 사례로 판단된다. 다만 그들의 이주가 자발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었는지, 아니면 요 조정에 의한 것인지 그 배경에 관해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아울러 요말(遼末) 서경도-삭주에서 가계를 이어간 고영견(高永肩)과 동경도(東京道) 요양(遼陽) 일대에서 가계를 이어간 고정(高楨) 모두 고모한의 ‘5세손(世孫)’인데, 동시대를 살아간 두 인물은 서로의 존재를 몰랐던 것으로 추정된다. 요초 이후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너무 멀리 떨어진 상황이 두 사람 모두 고모한의 후손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