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다양한 기록을 경유하여 한 무명 여인의 삶에 접근하고, 이를 통해 식민지기 여성운동을 재구하고자 하는 시론적 성격의 글이다. 그 일환으로 이 글은 전등지라는 한 여인의 삶에 주목한다. 본고에서 이 여인의 삶은 남편에 관한 기록과 근화회 관련 기록으로 재구된다. 도쿄에 거주하던 시절 그녀는 남편의 사회적 지위를 적극적으로 전유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남편과 함께 도미한 후 근화회에서 활동, 교류하는 가운데 가부장제의 문법을 전면 거부하기에 이른다. 이는 김마리아를 비롯한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동시대 여성에게 미친 영향력을 상상할 수 있는 장면이다. 김마리아는 애국부인회 취지문(1919)을 통해 여성에게 주어진 애국의 자격과 권리를 역설한 바 있다. 그러나 근화회(1928) 개회사에서는 여성에게 부과된 열악한 지위를 의식하며 이전보다 소극적인 자세를 보인다. 이러한 변화를 야기한 원인으로는 김마리아의 신체와 정신을 훼손했던 제국의 폭력, 훼손된 신체를 반복적으로 재현했던 미디어, 이를 바라보는 대중의 관음증적 욕망, 여성을 주변화했던 민족운동의 내부, 유학 생활 중 형성된 아시아 여성으로서의 자각 등을 들 수 있다. 최종적으로 김마리아는 민족의 아내로서 교육에 투신했고 미국에 홀로 남은 전등지는 신문에 “류태경 부인”으로만 등장한다. 전등지와 김마리아의 생애는 조선인 여성이 마주했던 제국과 피식민, 가부장제의 벽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