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조선 초의 궁궐 운영에서 보이는 과도기적 상황을 고찰한다. 조선 개국 직후 몇십년간의 상황은 조선시대와는 다른 점이 보이며 오히려 고려와의 연관성을 살펴볼 수 있다. “고려사(高麗史)”를 통해 고찰한 결과 고려시대 궁궐 운영은 중심 궁궐인 본궐이 있음에도 자신의 궁궐을 따로 만들어 기거했다는 점이다. 자신의 궁궐을 만듦으로서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의 분리를 보여준다. 고려의 방식은 조선 개국 직후 궁궐 영건에도 영향을 미친다. 바로 세대별 궁궐 운영이 그 특징이다. 이는 태종이 자신의 궁궐로 만든 창덕궁 창건으로 이어진다. 이후 조선의 궁궐제도가 만들어지기 시작하는데 세종조 의례 정비를 통해 왕과 왕세자의 공간을 합치게 된다. 그러나 왕의 부모 공간은 따로 인식되었고 이런 영향은 성종조까지 이어진다. 성종조의 창경궁 창건은 왕이 대비와의 분리를 선언한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