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1975년 김일성의 북경 방문이 한반도의 무력통일 도모보다는 인도차이나 공산화의 파장에 대한 위협인식에서 중국의 대북 안보 공약을 확인하기 위한 행보였으나 미국의 대한 방위공약을 강화하는 반명제로 귀결되었다고 주장한다. 북한이 인도차이나 공산화로 인해 ‘남조선혁명’ 재연에 대한 자신감이 아니라 오히려 위협인식을 가졌던 것은 베트남 전 종결 시 미군의 한반도 재배치 내지 주한 미군 철수 계획의 차질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요컨대 사이공 함락은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와 같은 남한의 안보위협 고조뿐만 아니라 북한에게도 심각한 안보위협을 가하는 남북 간 상호 위협인식(mutual threat perception)의 계기였다. 김일성의 북경 방문 시 호전적 발언 등 위기조성전략을 통한 중국과의 동맹 강화 노력이 도리어 미국의 대한 방위공약 강화를 촉진하는 반대의 결과를 가져왔다. 또한 미국의 대한 안보 공약 강화와 남한의 방위력 증강이 북한의 위협인식을 고조시키는 상승작용을 벌였다. 이처럼 남북한 상호 위협인식과 남북한 각기의 동맹 강화 시도 속에 남북한의 적대와 대립은 더욱 고조되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