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에서는 전북 부안군과 고창군의 바닷가 경계 지역인 서호(西湖) 일대를 유람했던 19세기 사대부 문인들의 가사·연작시·산수유기를 서로 견주어 검토하였다. 이를 통해 19세기 서호 일원의 문화적 도상을 입체적으로 도출해 내고자 하였다.
현재의 줄포만인 서호는 이 지역에 터전을 둔 재지사족에게는 경세의 뜻을 펴지 못한 답답한 심사를 풀어낼 수 있는 위안의 공간으로 인식되었다. 유람을 하며 마음을 다스리고자 했던 재지사족의 술회를 통해 서호 지역의 은자적 풍광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외지의 유람객들은 곳곳의 승경을 역람하면서 이곳에서 봄가을의 정취를 만끽하였는데, 지인과 담소를 나누며 흥취를 돋우는가 하면, 고인과 선유가 끼친 자취를 되새기기도 하였다. 또한 서호 일대의 절경에 매료되어 세속을 떠나 은거하려는 뜻을 내비치다가도, 이내 일상적 삶의 공간에 완연히 녹아들어 시정의 난만한 유흥을 즐기기도 하였다.
이러한 편폭이 나타나는 이유는 서호 일대의 경관이 그만큼 다채롭기 때문으로 파악된다. 산지와 바다, 자연경관과 인문 환경, 역사적 내력과 현재적 삶이 조화를 이루는 데다, 지점을 조금만 이동해도 사뭇 다른 풍광이 펼쳐지는 특색이 있기에 비교적 짧은 유람의 일정에도 그처럼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서호 주변의 여러 지점을 두루 유람하면서 작품을 짓는 경향이 19세기 사대부 문인들 사이에 나타났던 것도 그러한 다채로움을 직접 느껴 보고자 하는 지향이 내외에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조선후기에도 금강산·지리산·관동팔경 등은 여전히 명승으로 각광을 받아 왔으나, 19세기 들어 서호 일대가 점차 문인들 사이에 알려지면서 유력한 자연적·문화적 명소로 부각되었던 궤적을 도출할 수 있다. 아울러 견문의 다양함에 걸맞게 견문을 담아내는 방식도 가사·연작시·산수유기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서호의 경관을 접한 후 얻게 된 감회를 위주로 하느냐, 실제적 체험을 보다 중시하느냐에 따라 적절한 양식이 달리 채택되었던 것이다.
물론, 기록들을 일별하면 공통된 여정 내지 반응이 발견되기도 한다. 내소사에 들러 정지상의 시에 차운하거나 채석강에서 이태백을 연상한 것, 상업적으로 번성한 줄포의 풍광에 놀라움을 표하거나 바다로 돌출된 상포의 호젓한 아취에 매혹된 것 등은 복수의 기록들에서 발견되는 사항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그러한 지점들을 유람의 기본 경로에 포함시키면서도 각 문인들의 취향과 선호에 따라 잘 알려지지 않은 지점들을 탐방하고서 새로운 경관을 얻었다는 기쁨을 드러낸 사례들도 적지 않다. 그와 같은 방식으로 19세기에 서호를 유람하는 새로운 경로가 지속적으로 개척되면서 이 지역의 미감을 이해하는 견지도 보다 확장되었던 것이다. 지리지나 읍지 등에는 발견되지 않는 당대적 현상을 이들 작품을 통해 세세히 되살려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문학지리학적 탐색의 의의를 도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