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학적 일월식론은 여말선초 주자학의 수용 과정을 통해 한국에 소개되었다. 『詩傳』을 비롯한 주자학 관련 텍스트가 보급되고 이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군주의 修德行政 여하에 따라 마땅한 일월식이라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는 주자학적 일월식론이 널리 수용되었다.
18세기 이후 서양 천문학을 학습한 일부 지식인들은 주자학적 일월식론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일월식은 규칙적인 현상으로 人事와는 무관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보수적인 주자학자들은 이러한 문제 제기에 우려를 나타냈고, 조정에서는 주희의 설이 19세기 중・후반까지 고수되었다. 일부 지식인들에 의해 일월식은 규칙적인 현상으로 人事와는 무관하지만 그래도 해가 무언가에 가려지는 것이 좋은 현상은 아니므로 군주는 마땅히 修省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절충적인 견해가 제출되기도 했다.
조선후기 지식인들이 일월식의 규칙성을 알면서도 當食이라도 不食할 수 있다는 일월식 재이설을 고수하였던 것은 재이론의 효용성 때문이었다. 그들은 군주에게 恐懼修省을 요구할 수 있는 기제로서 재이론의 효용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월식 재이설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