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한국 고전시가의 전통적 미의식이자 주제적 범주로 자리하고 있는 ‘江湖’에 대한 이해 방식을 재고하기 위한 일종의 사례 연구로, 특히 그간 연구에서 간과되었던 조선후기 가사의 강호 형상에 초점을 맞추어 그 예술사적 맥락과 작품의 의미를 살펴본 것이다. 조선후기 강호 형상의 변모 양상과 그 예술사적 영향 관계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논의의 범위는 조선후기 서울 및 근기지역(이하 京郊地域)의 가사 작품으로 한정하였다.
‘江湖歌道’는 고전시가사 전반을 관류하는 주제의식으로, 강호가도 연구가 고전시가 연구사에 끼친 영향은 다대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후기 가사에서 강호 형상은 조선전기 강호가도의 형성 및 전개과정을 이해하는 구도 속에서 다소 범박하게 이해되었다. 이러한 해석 관습 속에서 본고에서 다루려고 하는 경교지역 가사, 홍계영의 「喜雪」과 남도진의 「樂隱別曲」같은 작품들은 거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희설」의 경우 여전히 분류조차 불분명한 상태이다. 이처럼 조선후기 가사 작품 중 적지 않은 수가 적절히 분류되지 못했고, 이 때문에 연구 대상으로조차 고려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문제는 명확하다. 비록 기존 강호가도 및 강호시가 연구가 조선 전·중기의 강호 형상의 경향을 설명하기에 적절할지라도, 조선후기의 그것을 설명하기에는 미흡하다는 것이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존재 양상 및 작품세계가 적절히 규명되지 않았던 조선후기 경교지역 가사의 강호 형상을 예술사라는 관점을 통해 살펴보고자 하였다.
2장에서는 조선후기 ‘강호’의 예술사적 맥락 고찰을 위해, 이 시기 자연관의 변화와 예술사의 실질적 흐름을 연결하여 살펴보았다. 이 시기 문인들의 예술은 결국 이들의 사상적 기반과 떼어놓을 수 없는데, 특히나 자연관은 한 인간이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을 좌우하는 큰 뼈대로 조선후기 ‘강호’ 개념의 실질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 장에서는 조선후기 실학이 대두하면서 기존의 도학적 자연관에 나타났던 변화의 조짐과 이로부터 등장한 새로운 문인 문화를 통해, 자연에 대한 당대인들의 인식 뿐 아니라 예술사 내에서 강호의 의미 맥락 또한 점차 바뀌어 갔음을 밝혔다.
3장에서는 홍계영의 「희설」과 남도진의 「낙은별곡」을 중심으로, 2장에서 살펴보았던 경향성을 확인하고 작품에 대한 이해를 넓혔다. 그간 홍계영의 작품은 뛰어난 묘사로 주목받았는데, 이러한 작품의 근저에 내재한 자연을 향한 시선은 적절히 해명되지 못했다. 본고에서는 「희설」에 나타난 ‘강호’ 형상이 변화하기 시작한 자연관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음을 추론하였다. 「낙은별곡」은 작품 소개 이후 별다른 연구가 없는 실정인데, 이 작품에서 또한 조선후기 경교지역 사족들이 향유했던 예술장의 모습과 이로부터 나타나는 자연 인식을 살펴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