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서 『주역』은 총 35괘의 괘명을 통행본 『주역』과 다른 한자로 표기하고 있다. 이는 백서 『주역』 발굴 초기에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었지만, 그 이유에 대해 가차자(假借字)를 썼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면서 괘명에 대한 관심은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해당 괘명의 한자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단지 가차자를 쓴 것으로 볼 수 없는 경우들이 있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해당 괘명에 대해 원점으로 돌아가서 글자 자체에 대한 분석과 검토를 시도하였다. 이후 해당 괘효사 및 관련이 있는 역전(易傳) 구절까지 검토함으로써 해당 괘명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하였다. 연구 결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그동안 단지 음이 같거나 비슷하기 때문에 채택된 가차자로 여겨졌던 한자들이 그 의미에 있어서 서로 일정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밝힐 수 있었다.
② 서로 관련이 있다 해도 그 의미가 똑같은 것은 아니며 일정한 차이가 있다. 따라서 백서 『주역』이 괘명으로 채택한 한자는 해당 글자 본연의 의미를 통해 괘의 취지를 형상화한 것이지 가차자로 쓴 것이 아니다.
③ 통행본 『주역』과 백서 『주역』이 이처럼 의미상 일정한 차이가 있는 한자를 괘명으로 채택한 이유는, 같은 괘를 바라보더라도 어느 측면에 주안점을 두고 보는가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④ 이처럼 괘명의 차이가 괘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에 기인하는 것이라면, 괘명의 차이를 연구함으로써 『주역』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더욱 깊어질 수 있을 것이다.
⑤ 통행본 『주역』과 백서 『주역』 간에 괘의 명명이 달라지면서 그와 같은 변화가 괘효사의 내용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볼 수 있는 사례가 발견된다. 이는 백서 『주역』의 괘명을 연구할 때 단지 괘의 명칭만을 논할 것이 아니라 해당 괘효사에 대한 검토까지 아울러 이루어져야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