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한원조를 ‘개발’의 측면이 아닌 문화의 측면으로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기존 연구에서는 지나치게 미국 대한원조를 개발 중심으로 독해함으로써, 실제 미국 대한원조의 냉전문화적 성격이 잘 드러나지 못했다. 특히 이 시기 인도주의 구호원조를 다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루시 아담스와 근동재단의 사례는 이러한 문제인식을 잘 반영한다.
첫째, 루시 아담스는 1930년대 미국 혁신주의 활동의 흐름을 반영한 인물이다. 그는 냉전 하 포인트 포 사업에 참여하였고, 지역사회개발사업에 참여하였다. 그가 주로 강조한 것은 미국식 민주주의, 자조 등의 개념이었는데, 이는 그가 활동했던, 1930년대 미국 뉴딜정책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그는 미국 외교정책이 정한 범위 내에서, 낮은 수준의 근대화보다는 조금 더 진전된 형태의 교육을 저개발국에서 진행하고자 하였다. 둘째, 근동재단은 인도주의 구호단체의 전형이었다. 이 단체는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중동지역의 구호를 위해 결성되었다. 그후 미국 대외원조에 참여하면서, 미국 원조에서 자선단체가 결합한 한 사례를 보여주었다. 다만 미국 외교정책과 별개로 근동재단은 ‘낮은 수준의 근대화’에 주로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수원국이었던 한국정부, 한국농민들은 지역사회개발사업에 충분히 만족하지는 못했다. 그들은 ‘낮은 수준의 근대화’ 이상을 원했지만, 충분한 외원이 투입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는 미국정부가 원한 방향과 합치하는 것이었다. 미국정부는 과도한 외원을 투자하거나, 낮은 수준의 근대화 이상의 사업개발을 추구할 생각이 없었다.
결론적으로 1950년대 한국의 지역사회개발사업에 참여했던 루시 아담스, 근동재단, 미국정부의 시선이 조금씩 다르게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점은 오늘날 인도주의 구호원조가 저개발국 일반에 무조건 적합한 형태는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나아가 인도주의 구호 뒤에 위치한 국가 및 국제정치의 이익을 다시 한 번 살펴볼 필요성을 제시한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