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노론계 ‘낙론의 종장’으로 평가되는 미호 김원행(渼湖 金元行)과 그에게 직접 수학(修學)한 담헌 홍대용(湛軒 洪大容), 그리고 담헌의 후배·동료이자 이른바 ‘북학파’를 이끌었다고 평가되는 연암 박지원(燕巖 朴趾源)으로 이어지는 낙론(洛論)계 세 학자의 ‘인물성동론’의 층차를 비교함으로써, 연암의 ‘인물성동론’을 재조명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미호를 비롯한 기존 성리학자들에게는 인간과 물(物)이 형태를 갖추기 전, 아주 근원적인 차원의 ‘본연’의 상태에서만 그들의 성(性)이 같다고 간주된다. 조금이라도 기질의 영향을 받게 되는 현실의 차원에서는 인·물의 외형적 형태뿐 아니라 도덕성 발현에 있어 차등이 발생한다. 미호의 인물성동론은 인·물의 ‘동등성’을 말하기보다 인간이 물(物)보다 ‘우월함’을 강조하기 위한 동론으로서, ‘배타적 인물성동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담헌에게는 현실적으로 드러난 기질의 차원이 훨씬 중요해진다. 기질과 형태적 차이는 종(種)적 특성을 드러낼 뿐, 인·물이 구현하는 도덕성은 형태의 차이를 초월하여 동일하게 완전하다는 것이 담헌의 ‘동론’이며, 이는 미호의 동론과 그 층차를 완전히 달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물의 동등성을 ‘물(物)에게서도 인간다운 도덕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에 근거하여 설명하는 것은 여전히 ‘같음’의 기준을 인간중심적인 가치에 두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담헌의 인물성동론은 ‘인간중심적·도덕중심적 인물성동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연암에게로 오면 본연지성이나 도덕성 같은 것은 부차적인 것이 된다. 연암에게는 인·물의 본연지성, 도덕성의 발현, 형태적 차이 등이 관건이 되지 않는다. 연암이 주장하는 ‘같음’의 기준은 바로 그들이 동일하게 품부받은 생명력, 곧 ‘생기(生氣)’이다. 인·물이 존재의미와 목적, 그리고 생의 의지[生意]를 갖고 이 땅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이미 동등한 가치를 부여받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연암의 ‘동론’은 비단 ‘성(性)’의 동일성을 말하는 ‘인물성동론’에 그치지 않고 생의(生意)를 가지고 있다는 그 자체로 모든 개체가 동등한 지위를 공유하는 ‘인물동론’으로 확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