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에서는 1910년대 독립군 양성의 메카이자 요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전하는 군사교범이 없는 관계로 군사적 실체가 미개척 분야로 남아있는 신흥무관학교의 군사교범 간행 여부와 역사적 위상을 보병보전의 한ㆍ일 비교발달사를 시계열적으로 대비하는 방식으로 탐색하였다. 그 결과 대한제국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이르기까지 1898년, 1906년, 1924년의 세 차례에 걸쳐 편찬된 보병보전 또는 보병보전초안은 1889년 독일식 군제 채택 이후 1945년 패전까지 일본이 다섯 차례에 걸쳐 제정한 보병보전 중에서 앞의 세 시기, 즉 1891년, 1898년, 1909년에 발행한 보병보전을 직역(直譯)하는 방식으로 수용한 사실상의 번역본임을 확인하였다. 따라서 그 중간 시기에 위치한 신흥무관학교에서는 별도로 보병보전을 간행하지는 못하였던 것으로 결론지었다. 반면에 군사훈련의 책임자이자 지도자로 활약한 윤기섭(尹琦燮)이 1924년 임시정부에서 발행한 보병보전초안의 편집 책임자로서 독자적인 순한글식 구령체계와 독립군의 소부대전술에 적합한 교범체계를 정립하였다는 점에서, 신흥무관학교는 대한제국 이후 임시정부에 이르는 일련의 보병보전 개발의 가교적인 토대를 구축했던 시기로 자리매김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