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주자학과의 관계에서 최한기 철학의 특징과 의미를 재해석하기 위해 기획된 글이다. 주자학적 독법에서 보았을 때 최한기 사상의 어떤 측면이 좀 더 분명히 부각되는지, 그의 비판적 문제의식은 무엇이었는지 살펴보는 것이 본고의 목적이다. 필자는 최한기 사상을 서양근대학문으로 단순하게 환원하거나 수렴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한 것처럼 그의 사상을 조선시대 전통학문, 즉 주자학과 완전히 단절해서 이해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본다. 中西를 아우르는 보편학문, 東西의 학술을 소통시키는 새로운 一統의 학문을 수립하는 것이 최한기 사유의 목표였기 때문이다. 최한기가 자신의 프레임에 맞게 서구학문을 활용하기 위해서도 그는 서양과 다른 지적 안목을 전제할 수밖에 없었다. 필자는 최한기 사유와 주자학에 전제된 공통된 지적 문법을 다음을 중심으로 검토했다. 運化氣[천명지성]와 形質氣[기질지성]의 위상을 구분함으로써 氣의 두 층위를 변별한 점, 전통적인 理氣・性情의 體用論을 기의 성정, 운화기의 체용론으로 변형시켜 활용한 점, 개체의 形質에 국한된 神氣를 변통하여 운화기에 부합하도록 만드는 기질 극복의 공부를 인정하고 天人一致와 萬姓一體의 수양론적 목표를 설정한 점, 인식뿐만이 아닌 나[修身]와 타인[相人]의 변화를 推測의 중요한 효과로 상정한 점 등은 주자학과의 관계에서 비판적으로 음미될 수밖에 없는 쟁점일 것이다. 최한기는 유학 규범을 강조했지만 그럼에도 유학을 재건하는 것을 학문의 목표로 삼지 않았다. 최한기는 중국과 조선, 서양과 동양의 관계에서 위계나 차등이 아니라, 동서를 관통하는 일통의 보편적 사유를 지향했다. 따라서 주자학뿐만 아니라 서학에 대해서도 거리둠이 불가피했고, 반대로 서학만큼이나 주자학에서도 유효한 지적 단서를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