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계』지는 1950년대 초반 창간되어 전후 50년대 냉전질서 하 남한에서 미국을 비롯한 자유세계의 반공주의, 자유민주주의 담론을 적극적으로 번역, 전파하는 역할을 자임했던 지식인 잡지였다. 본 논문에서는 『사상계』지의 이러한 기본적 속성을 파악한 바탕 위에서 『사상계』지에 나타난 ‘중국 표상 및 담론’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사상계』지에 나타난 ‘중국’ 관련 담론은 크게 필자에 따라 ‘서구인이 쓴 글’과 ‘한국인 필자가 쓴 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러한 분류를 취한 이유는 ‘화자의 정체성’에 따라 ‘중국’을 보는 시선에 미묘한 ‘차이’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본 논문은 이 ‘차이’를 발생시키는 ‘정체성(identity)의 문제’를 중요한 테마로 삼아 담론 분석을 진행하였다.
『사상계』소재 서구인 필진들은 중국을 ‘공산주의 국가’이자 ‘아시아 국가’로 표상하며 이중으로 타자화했다. 이러한 시선은 ‘아시아’가 본래적으로 ‘공산주의’에 취약한 지역이라는 인식 하에 생산, 전파된 ‘식민주의적 반공주의 담론’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사상계』 소재 한국인 필진들의 중국 인식은 보다 다층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당시(50년대) ‘중국’은 『사상계』지의 한국인 필진들에게 세 가지 버전으로 표상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중공(中共)’, ‘지나(支那)’, ‘자유중국’이 그것이었다. 중공은 예상하다시피 한국인 필진들에게 적대적 타자로 간주되었으며 필진들 역시 이러한 구도 속에서 자신들을 ‘적의 적’으로 자기 정체화했다. ‘지나(支那)’는 일종의 ‘고대 중국’으로서 한국인 필진들에게 ‘아시아 리저널리즘(regionalism)을 상기시키는 담론적 매개로 기능했다. 마지막으로 ’자유중국‘은 손문에서 장개석으로 이어지는 중국 내 우익 민족주의 세력을 지칭하는 개념으로서 『사상계』지 필진들에게 감정적 동일시의 대상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중국’ 표상과 관련하여 『사상계』지 필진들은 서구인 필진들의 번역된 논설과 많은 부분 일치하는 논조를 보여주었으며 ‘서구(아메리카)를 따라가야 할 모델로 설정’하는 동시에 ‘중국 표상’을 매개로 ‘아시아적/동양적’ 자기 정체성을 표출하기도 하는 ‘병행적 담론 형태’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본 논문은 연구사 상에서, 『사상계』지를 비롯한 전후(한국전쟁 후) 남한의 지식인 담론장이 냉전 분할 구도로서만 과잉 표상되어 온 측면이 없지 않다고 판단하여, 지배적 냉전 담론에 개재된 ‘아시아라는, 정체성(identity) 측면의 힘과 운동성들’이 담론장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면밀한 텍스트 읽기를 통해 분석하였다. 분석 결과 『사상계』 지식인 그룹의 ‘중국 관련 표상 및 담론’에는 ‘아시아 리저널리즘’에의 무의식적 접근욕망이라 할 만한 어떤 경향성이 내재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선 본 논문에서는 ‘이 경향성’의 의의를 ‘평가’하기보다는 그것이 당대의 담론장 내에서 여타의 표상, 개념들과 어떠한 관계망을 형성하고 있었는지를 살피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이러한 시도는 당대의 지배적 반공 담론의 중층적 함의를 살피는 데에 일조할 것이라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