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山 丁若鏞의 『欽欽新書』는 조선시대의 인명사건 판례집이다. 이 작품은 재판 판결의 원칙과 규범을 經史를 통해 밝힌 「經史要義」, 중국의 모범적 판례와 공문서를 소개한 「批詳雋抄」와 「擬律差例」, 正祖의 御判과 다산의 비평을 담은 「祥刑追義」, 관리로 재직할 때 다산이 경험한 사건을 소개한 「剪跋蕪詞」로 구성되어 있다. 이 글에서는 「經史要義」를 집중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유학자로서 정약용이 제시한 유교적 성격의 재판 원칙과 규범을 밝히고자 한다.
『흠흠신서』의 제목이 보여주듯이 조심하고 삼가야 하는 관리의 欽恤과 哀敬의 자세는 다산이 「경사요의」에서 제시한 13가지 모든 원칙을 관통한다. 그런데 다산이 『서경』과 『주례』를 인용하며 판관의 흠휼을 강조한 것은, 유교적 사법체계에서 범죄 성립과 재판을 결정하는 것이 범죄행위 자체가 아니라 행위자의 고의성 여부였고, 그런 심리상태와 心證을 밝히기 위해서는 판관의 신중함이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다산은 과오(眚)인지 고의(終)인지 여부가 살옥을 다루는 큰 원칙이라고 말한다. 過誤殺 여부와 心證을 중시했던 것은, 유교적 형법과 형벌이 지향한 최종 가치가 윤리 덕목이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倫綱이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며, 최악의 범죄를 강상범죄로 간주하게 된 것, 그리고 강상죄인에 대한 사적인 복수살인조차 허용했던 응보주의적 관점이 용인된 것도 위와 관련이 있다.
다산이 「경사요의」에서 제시한 ‘仇讐擅殺(6원칙)’, ‘義殺勿讐(7원칙)’, ‘受誅不復(8원칙)’, ‘亂倫無赦(10원칙)’, ‘弑逆絶親(11원칙)’ 등 재판의 규범적 원칙들 대부분이 윤강과 직결돼 있다. 그런데 유교사회의 강상윤리는 주지하다시피 君臣・父子・夫婦・奴主 간의 名分을 기반으로 한다. 명분은 親疏尊卑와 上下貴賤에 따른 특권과 차등성을 허용하며, 바로 이런 명분 관념이 구체화된 것이 각종 禮制다. 법으로 단죄하는 犯分 행위란 것은 결국 예와 명분이 지향하는 존비・귀천의 위계질서를 거스른 행위를 말한다. 유교화된 법은 명분 관계에 따라 상이한 형벌을 제공했다. 다산이 「경사요의」 제9원칙에서 『주례』 ‘八議(八辟)’을 거론하며, 종실・귀족・국가공로자 등의 減刑이라는 ‘同罪異罰’ 원칙을 허용한 것도 이런 점 때문이다.
『흠흠신서』의 수많은 사건을 좌우한 유교적 재판 원칙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결국 名分과 犯分 간의 엄격한 구별을 강조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군신・부자・부부・노주의 명분, 士族・常漢의 명분을 내세웠을 때, 그 밑바탕에는 도덕적 우월성이 자리잡고 있었다. 유학자들의 특권의식은 윤리적 엘리트주의였던 것이다. 다산이 유학자로서 추구했던 이상도 결국 도덕성에 기반한 정당한 차별과 위계질서를 수립하는 것이었는데, 이 점은 欽書의 가능성이자 동시에 한계로 작동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