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수립 이전부터 정치외교지도자들은 미국중심의 세계적 흐름을 공유하며 인식을 구체화했다. 정치외교지도자들은 미국에 대해 첫째, 해방 이전부터 코리아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주기를 기대했다. 둘째, 해방 이후 미소 공동위원회의 활동과 미국 주도의 좌우합작에 대해서 강하게 비판했다. 셋째, 대한민국의 승인 이후 미국의 지속적인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국의 공산화가 방지될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공산주의에 대해서 장택상은 공산주의자들의 테러 속에서 좌우합작은 이남지역을 공산화시킬 것이라며 물리력을 동반한 반공인식을 나타냈다. 임병직은 이승만과 마찬가지로 역사적 이해와 비교정치적 맥락에서 반공 인식을 견지하고 있었다. 변영태는 중국은 소련으로, 일본은 미국으로 편입되어 전 세계가 두 개의 세력권으로 재편될 것이며 이에 따른 코리아의 공산화 가능성을 분석적으로 인식했다.
한국외교조직은 미국, 아시아, 유럽에 대한 인식과 강한 반공인식에 기반해서 설계되었다. 서구의 사상적 흐름을 수용한 장택상의 지시로 미국과 일본에서 유학한 실무자들이 외교직제를 설계했다. 직제구성은 일본과 유사했고, 미주, 아시아, 유럽 담당 과(課)가 설치됐다. 임병직은 안보적, 경제적 문제 해결을 위한 대미외교를 적극적으로 실시했고, 세계 각국과 교섭하여 정부승인에 집중했다. 대한민국 초기 정치외교지도자들은 구체화된 지역인식을 견지하며, 외교활동의 실무와 정책 등에서 특정한 성과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