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17세기 영국의 명예혁명과 20세기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타협민주화라는 민주화의 이론적 모델을 비교역사학적으로 적용하여 고찰하였다. 필자는 17세기 영국과 20세기 한국 두 나라의 정치적 격변사례를 타협민주화라는 관점에서 비교사적 연구를 시도하였다. 두 나라의 혁명과 민주화의 사례가 공간적으로 유럽과 동아시아, 그리고 시간적으로 3세기 간의 격차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타협민주화라는 점에서 매우 유사성이 특징적으로 나타났고
다음의 결론들을 도출하였다.
첫째, 양국의 민주화의 중심에는 두 개의 이질적이지만 타협을 중시하는 정치세력의 등장과 이들 사이의 갈등뿐 아니라 정치적 타협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영국의 17세기 명예혁명은 이전 시기 정변의 계승적 성격을 갖는데 이에는 장기적인 왕권에 대한 의회세력의 도전이 작용하였다. 1688년 영국의 토리와 휘그는 타협하였고 그 결과 오렌지공 윌리엄에 대한 비밀서한을 보내 국왕 제임스에 대한 의회의 투쟁전선에 지원세력으로 가담시켰다. 무엇보다 토리와 휘그와의 초당적 타협이 위력을 발하였고 국왕과 의회의 타협도 큰 몫을 한 것이다. 한국은 87년민주화에서는 야권내의 민주화운동세력이 등장한 6,10 항쟁이 초기 민주화 전개의 절정을 이루었고 직후에 권위주의 정부내 온건개혁파를 대변하는 노태우의 6.29선언이 중기 타협정치의 성공에 크게 공헌하였다.
둘째, 두 나라의 정치적 사건들은 양국의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헌정체제를 탄생시키고 발전과 번영을 가져다 준 위대한 성공의 사례이며 그 중심에는 두 정치세력의 협력과 타협이 중요했다. 영국의 명예혁명 사건은 국왕과 의회와의 갈등 사이에서 결국 양자 사이의 타협적 거버넌스 체제를 도출하게 되었고 그것이 이후 30년 동안“의회내 국왕제”라는 특이한 입헌군주체제로 나타났다. 반면, 한국의 87년 민주화는 운동권과 야당의 연합에 의한 민주화 요구로 시작되었고 5공정부내의 노태우를 중심으로 한 온건파의 대응과 협력으로 성취될 수 있었다.
이후 한국의 민주화는 여야간의 정치적 타협으로 이어져 5년담임대통령에 의한 87년헌정체제의 수립으로 귀결되었고 지난 30년 동안 한국의 민주주의를 이끌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