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와라 간지(石原莞爾, 1889-1949)는 제국 일본의 육군 엘리트 장교였다. 육사와 육군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독일 군사유학까지다녀온 뒤에 만주사변과 중일전쟁 시기에 일본의 군사 및 대외정책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인물이다.
그런데 그에 대해 아시아 침략주의자란 평가와, 중국과의 우호관계를 중시한 평화주의자라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본 연구는 이시와라 간지에대한 상반된 평가를 염두에 두면서, 3개의 시기, 즉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의 시기로 나누어, 각각의 시기마다 그의 최종전쟁론, 동아연맹론, 그리고 국방국가론의 담론들이 실제 일본의 전쟁 및 대외정책과 어떻게 교호작용을 하면서 형성되고 전개되어 갔는지를 재구성하려고 하였다.
‘최종전쟁론’이란 일련종의 국체론 교의 및 독일 전쟁사관에 영향받아 형성된 것으로 일본이 동양 왕도(王道)문명의 대표로서, 서양 패도(覇道)문명의 대표인 미국과 세계통일의 이상을 놓고 결전을 벌이게 될 것이라는인식이다. 이시와라는 이러한 인식에 입각하여 만주사변을 획책하였고, 그입장은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의 국면에서도 지속되었다. 또한 ‘최종전쟁’ 대비를 위해 안으로는 ‘국방국가’ 건설, 밖으로는 ‘동아연맹’ 결성이라는 ‘쇼와유신(昭和維新)’의 과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하였다.
이상의 서술에서 드러났듯이, 이시와라는 만주사변 이후 국제체제에서이탈한 일본의 현상변경적 대외정책, 군국주의적 국가관과 전쟁정책을 주도하고 대변한 대표적 정책실행자이자 이데올로그였다. 이시와라의 주요견해들은, 고노에 후미마로(近衛文麿) 등의 담론과 더불어, 일본 군국주의의 내적 논리를 구성하는 주요 지표로 간주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