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편전쟁 이후 자주적으로 문호를 개방하고 메이지유신을 단행한 일본은 강화도사건을 일으켜 서양과 같은 방식으로 한국을 개국시키고 대륙팽창 의지를 체계적으로 추진하며 중화질서를 전복시키고 일본 중심으로 동아시아 국제관계를 재편해갔다. 이 과정에서 일본이 주창한 ‘아시아연대’론은 서양 열강에 대한 근대 국가 일본의 국권 확립과 팽창을 위한 패권의 정치적 수사였다. 그러나 거기에 중국과 한국의 지식인들이 호응하기도 했다는 사실은 근대적 개혁기 국권 인식의 차이를 드러낸다. 일본의 그것은 서양 근대에 대한 대자적 인식 속에서 자주적 주체적으로 근대 동양 국가의 주권을 정립하는 것이었다. 반면 한국의 그것은 서양에 대한 즉자적인 인식 속에서 종래와 같은 국가 주권을 유지하려 한 것으로 근대적 국권 인식이 미숙했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한국은 국권이 상실된 가운데 저항적 민족의식과 근대 국권 인식을 체험적으로 각성해가며 국가적 독립을 선취해야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