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18세기 초 恭齋 尹斗緖(1668-1715)書畵에 대한 관심을 점검해 보고, 윤두서서화를 소장하고 향유한 小論系 서화감상우들의 인적 구성과 역할, 그리고 그들의 윤두서서화의 수장 양상을 조명하는 데 목적이 있다.
18세기 초 서화고동취미 풍조의 확산과 맞물려 서화애호가들 사이에 윤두서서화에 대한 수장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였다. 윤두서의 서화 애호층이 등장한 동인은 다작을 하지 않아 희소성의 가치가 높았던 점, 상대할만한 뛰어난 화가가 없어 당시 화단의 제1인자로 급부상한 점, 이전 시기의 화풍과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새로운 회화를 추구한 점 등이다.
여러 문헌들을 검토해 본 결과 윤두서의 西人系 서화감상우의 인적 구성은 李夏坤(1677-1724), 柳澔(柳竹塢), 李師亮(1660-1719), 閔龍見(혹은 閔龍顯, 1668-1723), 沈齊賢(1661-?), 李明弼(1664-?) 등으로 파악된다. 이들은 윤두서가 46세(1713)까지 한양에 살았던 시기에 긴밀하게 교유했던 인물들로 서인 중에서도 소론 출신이다. 문헌 기록에 따르면, 유호가 윤두서서화를 가장 많이 소장하였으며, 이사량, 이하곤, 민용현은 윤두서서화를 각각 서너 첩 이상을 수장하고 있는 점이 확인된다. 이들이 소장한 윤두서 그림들은 함께 예술 활동을 펼쳤던 李淑(1662-1723), 李萬敷(1664-1732) 등 근기남인 서화가들, 가족과 친인척들에게 그려준 그림의 수량보다 훨씬 많다.
윤두서의 서화를 가장 잘 이해하고 애호했던 인물은 이하곤이다. 1708년-1710년 사이에 윤두서와 교유했던 그는 윤두서의 산수인물도, 노승도, 말 그림을 수장하였다. 평생토록 가장 뜻이 맞는 친구였던 유호는 서인계 감상우 가운데 윤두서의 그림을 가장 많이 수장한 인물이었으며, 사대부들은 그를 통해서 윤두서의 풍류가 또한 평범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조선 후기 서화평론가 이하곤과 李龜命(1693-1737)은 유호 집안에 소장된 《尹孝彦扇譜帖》을, 趙裕壽(1663-1741)는 《恭齋扇譜冊》을 완상하고 각각 제발을 남겼다. 이사량과 민용현은 사돈지간이다. 이사량은 윤두서와 20년 동안 교유한 서화감상우였으며, 민용현과 그의 장남이자 윤두서의 족질인 민창연도 윤두서의 그림을 수장하였다. 강경파 소론의 영수인 심수현의 동생 심제현과 서예를 잘 했던 이명필은 단짝이었는데, 이들도 윤두서와 서화모임을 빈번하게 가지면서 윤두서로부터 그림을 얻으면 보배로 여겼다고 한다.
윤두서는 감식안이 높은 소론계 서화감상우들과의 예술적 교유를 통해서 그의 명성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서 18세기 초 화단의 제일인자의 위치를 확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