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17세기 말·18세기 초 한양을 중심으로 예술 활동을 펼쳤던 '近畿南人 書畵家 그룹'의 형성과정을 검토해 보면 이 그룹의 핵심인물인 尹斗緖(1668-1715), 李서(1662-1723), 李萬敷(1664-1732) 등이 書畵壇에서 펼쳤던 예술 활동의 실체를 분석하는 데 주력한 연구이다.
윤두서, 이서, 이만부는 17세기 말·18세기 초 붕당정치가 난무한 시기에 살았던 南人系 재야 지식인이자 서화가였다. 윤두서를 대표로한 해남윤씨 가문, 이서를 대표로한 여주이씨 가문, 이만부를 대표로한 연안이씨 가문은 근기남인 계열의 대표적인 명문가로 선대부터 學脈, 黨色, 婚脈으로 이어져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에 걸쳐 한양을 중심으로 학문적, 예술적 네트워크를 형성한 점이 뚜렷이 포착되어 본고에서는 이들을 편의상 '近畿南人 書畵家 그룹'으로 부르고자 한다.
이 그룹의 속한 인물은 李潛(1660-1706)과 이서 형제와 그 자제들, 尹昌緖(1659-171)·尹興緖(1662-1733)·윤두서 삼형제와 윤덕희를 비롯한 그 자제들, 윤두서의 이질 이만부, 윤두서의 再從동생 沈得經(1673-1710) 등이다.
이 그룹의 구성원들은 1694년 갑술환국으로 남인이 실권하자 출사를 포기하고 함께 모여 독서와 강학, 저술에 몰두하였으며, 여가시간에는 그림과 글씨를 즐기면서 자신들의 불행한 현실을 극복하려고 하였다. 윤두서와 이서는 서로의 子姪들을 교육시켜 두 가문간의 결속력이 더욱 강해졌다. 이들이 모이는 장소는 한성부 南部明禮坊에 위치한 鍾峴(현 서울 명동)에 있는 윤두서 집과 明禮洞에 있는 이서의 집이었다. 이들은 이 그룹 안에서 경서의 탐구, 九經, 六藝, 九流, 百家, 상수학, 역대 흥망사, 卜筮, 地誌, 天文, 醫藥 등 대부분의 학문을 논의했다.
이들의 예술 활동은 윤두서의 장남인 尹德熙와 손자인 尹熔, 윤두서의 막내 사위인 申光洙, 李瀷, 姜世晃, 柳慶種으로 전승되었으며, 계속하여 윤두서의 외증손인 丁若鏞과 정약용의 외증손인 尹廷琦까지 이어지게 된 점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