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역기구(WTO) 체제는 개별국가의 자의적인 위생검역기준이 국내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위장된 무역제한수단으로 남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위생검역협정'("SPS 협정")에서 '과학적 증거주의'를 위생검역규제조치의 기본원칙으로 채택하였다. 반면 회복할 수 없는 심각한 피해가 우려되는 경우에는 'SPS 협정'상의 관련 규정에 따라 사전주의적 규제조치를 취할 회원국의 주권적 권리를 인정하였다. 국제환경법 상의 '사전주의원칙'(precautionary principle)이 반영된 'SPS 협정' 제5.7조는 인체위해성에 대한 과학적 증거가 불충분한 경우, 일정한 요건이 충족하는 경우에 한해, 국제표준보다 높은 수준의 사전주의적 위생검역조치를 잠정적으로 취하는 것을 명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식품안전 관련 보건정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고 식품안전 관련 통상분쟁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자유무역 가치와 인체건강 및 생명 가치가 상호 조화될 수 있도록 양자간에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양자가 어쩔 수 없이 충돌하는 경우에는 인체건강 및 생명 가치가 우선될 수 있도록 사전주의원칙을 적극적으로 적용하여야 한다. 과학적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사전주의원칙을 배제하거나 소극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자유무역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인간을 실험 도구화하는 무역·보건·환경정책을 정당화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과학은 본질적으로 상대적이며 불확실하기 때문에 '과학적 증거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위해성 평가에 관한 소수 과학자의 견해를 존중하고, 'SPS 협정' 제5.7조를 보다 유연하게 해석하거나 국제환경법상의 사전주의원칙을 'SPS 협정' 등에 구체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 다만 사전주의적 위생겸역조치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발동요건에 대한 적절한 통제가 필요하다. 과학적 사실에 논란이 있거나 과학적 증거가 도전받는 경우 원용될 수 있는 사전주의적 위생검역조치는 필요한 범위내에서만 적용되고, 회복할 수 없는 피해의 심각성에 비례하고, 비차별적이고, 입수가능한 적절한 추가정보에 입각하여 정기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