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종 양식은 통일신라시대 이후로 고유의 양식을 유지해왔다. 14세기말 고려시대에 중국의 종 양식이 전해지면서 15세기의 새로운 조선왕조에서는 전통종양식과 새로 전래된 중국종 양식을 결합하여 독창적인 조선종 양식을 창안하였다. 조선종 양식은 조선전기의 왕실에서 발원하여 만든 대형 종들이 대표적이다.
조선전기의 왕실에서 발원한 종은 현재 기록상에만 남아 있는 것을 포함하여 11점이 알려져 있는데, 이들 종들은 발원 목적에 따라서 크게 두 가지 성격으로 나뉜다. 하나는 혁명을 일으켜 왕위에 오른 왕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공덕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기념비적 성격의 朝鐘으로, 태조가 만든 雲從街鐘(1398), 태종이 만든 敦化門鐘(1413), 세조가 만든 光化門鐘(1458)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종은 현재 남아 있지 않지만, 도성내의 종각에 안치되어 시간을 알리기 위해 타종되던 종이다.
다른 하나는 왕실의 안정과 追善 및 사찰 중수를 위해 발원한 불교적 성격의 梵鐘으로, 세조와 貞熹王后(1418~1483)가 발원한 興天寺鐘(1462), 圓覺寺鐘(1464), 普信閣鐘(1468), 예종이 발원한 落山寺鐘(1469), 奉先寺鐘(1469), 仁粹大妃(1437~1504)가 발원한 水鐘寺小鐘(1469), 海印寺 大寂光殿鐘(1491) 등이 있다. 이중 일부는 현재 소실되었지만 현존하는 예들로 볼 때, 중국 명대 종양식의 영향이 일부 보이면서도 조선종 특유의 보살입상, 蓮廓과 蓮뇌 등의 형식 잔존 등 양식적 특색을 찾아 볼 수 있다.
이제까지 조선종 양식에 대해서는 조선의 抑佛정책을 통한 불교미술의 쇠퇴, 종양식에 보이는 중국의 영향 등만이 강조되어 조선종 특유의 독자성에 대해서는 검토되지 않았으나, 여기에서는 조선전기 왕실에서 발원된 종의 고유한 양식적 특징에 대해서 검토했다. 조선전기 왕실발원종은 당시 신 조류인 중국 명대종의 영향을 일부 받기는 하였지만, 조선 특유의 고유성을 바탕으로 새롭게 변형된 양식으로서, 조선전기 불교미술과 금속공예를 대표할만한 秀作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