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海南 尹氏 宗家인 해남 綠雨堂에 소장된 筆寫本 『管窺輯要』(80卷25冊)의 내용과 筆寫者에 대해 고찰한 글이다. 명말·청초의 黃鼎이 편찬한 『管窺輯要』는 중국 역대 典籍 중에서 천문 및 기상관측에 대한 이론들과 星占에 관한 기록을 발췌·편집한 전통적인 천문서로서, 1652년에 木版本으로 初刊 된 이후에도 여러 번 校刊되었다. 이 책에는 천문의 기록에 의거하여 그린 天災地變과 관련된 삽도들이 36면에 걸쳐 59장면이 실려 있다. 녹우당 소장 필사본 『관규집요』는 1655년에 간행된 판본을 底本으로 필사한 것이다. 특히 임모된 삽도들은 필사자의 화가로서의 뛰어난 기량이 엿보여 미술사적으로도 검토할 가치가 높은 회화자료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이 책은 필사자가 밝혀지지 않았고 肅宗代 문인화가 恭齋 尹斗緖(1668~1715)가 보았던 중국 천문서로만 소개되어 왔다. 필사본의 글씨와 윤두서 및 그의 아들 尹德熙(1685~1766)의 筆跡들을 비교 분석해 본 결과, 이 책의 필사에는 윤두서를 비롯하여 여러 사람이 참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필사본의 삽도들은 윤두서의 작품 및 그가 작품에 활용했던 明代에 출간된 『顧氏畵譜』, 『三才圖會』,『列仙全傳』 등의 산수, 인물의 모티프들과 화풍상 상응점이 많이 보여 윤두서가 전담해서 그린 것으로 보았다. 필사한 삽도들은 단순히 모사로만 그치지 않고 복잡한 별자리, 樹木, 人物, 動物, 屋宇까지도 모두 자신의 필력으로 소화시킨 윤두서의 회화적 기량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을 필사한 시기는, 첫째 어린 시절부터 보았던 『고씨화보』 이외에도 『삼재도회』, 『열선전전』 등 다양한 화보들을 통해서 익힌 樹葉法, 山石法, 水波描 등이 능숙한 솜씨로 구사된 점, 둘째 1700년을 전후한 시기에 천문학에 관심을 가졌던 점, 셋째 1706년에 南宋代 揚輝가 저술한 수학서인 『揚輝算法』을 필사했던 점, 넷째 필사한 대상의 원본을 구입하기 용이했던 시기가 서울에 거주했던 1713년 이전이라는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1700년 이후부터 1713년 이전으로 추정하였다.
따라서 이 필사본은 윤두서가 감상용 회화뿐만 아니라 당시 중국에서 유입된 천문서를 필사했던 사례를 남긴 점에서 윤두서의 회화와 학문을 폭넓게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또한 윤두서의 화보풍 산수 및 산수인물화의 면모를 다양하게 재조명할 수 있는 새로운 회화작품의 발굴이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