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시대와 자본주의의 시대에서 근대 사회의 도래는 개인의 분열을 초래했다. 근대인의 자기 인식은 전도되었으며 기계복제기술의 발달로 인해 혼란을 겪게 되었다. 사람들은 현대성이 만들어낸 매혹적인 환상에 빠져서 자신이 파편으로 약화된 사실을 간과하였다. 이러한 파편적 근대 사회에 맞서 김기림과 무단(穆旦)은 앞선 모더니스트로서 군중 너머 도시의 거리에서 경험의 파편을 줍고 순간적인 현상을 포착하여 대중 혹은 자신의 근대적 체험을 기록하였다. 이러한 시인의 도시체험을 기반으로 본 논문은 한국 시인 김기림과 중국 시인 무단의 전기 시에 중점을 두고 시인 각각의 시에 지닌 알레고리와 멜랑콜리의 내적 질서를 도출하고자 한다.
시는 "새로운 현실의 창조요 구성"이라고 주장한 김기림과 시의 "경이로운 발견"을 주장한 무단은 시의 현실을 단순한 사실의 재현과 구분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두 시인 모두 초기 시에서 세속화된 신의 모습을 시적으로 형상화하는데, 이러한 일상적인 것과 창조적인 것의 결합을 통해 구성된 '관습의 표현'으로서의 알레고리는 사물의 본래적 가치를 제거하고 물신화 사회를 전복할 잠재력을 지닌다. 그렇기에 두 시인 시의 이러한 특성을 어떻게 시에 작용하고 형상화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찰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알레고리의 시선을 가지고 있는 두 시인의 시에서는 불가피하게 멜랑콜리의 주체도 나타나게 되며, 이들 시의 멜랑콜리적 특이성을 규명하여 비교할 수 있다. 따라서 본 논문은 김기림과 무단 전기 시의 알레고리와 멜랑콜리적 특성을 도출하기 위해 시에 나타나는 개별적 이미지를 주요 분석소로 삼아 두 시인의 시를 비교하고자 한다.
II장에서는 김기림과 무단 전기 시의 도시에 나타난 신의 세속화 과정에서 드러나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벤야민적 알레고리를 통해 고찰한다. 근대 도시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가지고 있는 두 시인의 시에서 공통적으로 종교적 차원에 있는 신과 관련된 이미지를 사용하여 범속한 신의 모습을 제시한다. 2-1에서는 김기림의 전기 시에 나타난 '지하실'과 '쓰레기'라는 이미지에 중점을 두고 김기림 시에 내재된 신의 형상화 과정은 '수직'에서 '수평'으로 변모된 양상을 지닌 것에 대한 살펴보았다. 2-1-1에서 성(聖)에 영역에 해당한 이미지들이 연속적으로 속(俗)에 영역에 해당한 '지하실'로 추락한 시적 양상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추락의 연속성 속에서 마지막으로 화자 '나'가 등장하여 그러한 연속성을 파괴하는데, 이는 기성 질서를 파괴·전복하고자 하는 시인의 시도이다. 이어서 2-1-2에서는 '쓰레기'와 관련된 이미지들을 중심으로 수직에서 수평으로 변모한 신의 세속화를 살펴보았다. '쓰레기'는 근대 도시의 파편화를 보여주며, 파편으로 흩어진 무질서한 쓰레기를 다시 수집하는 '신의 유희'는 또한 시인이 하는 수집한 유희로도 볼 수 있다.
한편 2-2에서는 무단의 전기 시에 나타난 '동물'과 '숲'이라는 이미지에 중점을 두고 무단 시의 세속화 된 신의 알레고리를 살펴보았다. 2-2-1에서는 신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돼지", "뱀", "쥐"등 동물들이 인간의 삶을 우의하는 지점을 분석하였다. 이어서 2-2-2에서는 시·공간의 이질성을 가진 '숲'이라는 이미지에 중점을 두고 극화(劇化)된 신의 아이러니를 살펴보았다. 무단 시에 나타난 '동물'과 '숲'은 모두 자연의 이미지에 해당하지만, 그 이미지들은 자연 이미지가 통념적으로 함의하는 치유와 화목을 의미하지 않으며, 역설적으로 의인화된 신의 폭력 및 공포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김기림과 무단의 시에서는 모두 현세에 대한 절망을 지니는 동시에 기성 질서에 대한 거부도 드러난다. 그러나 이러한 절망 속에서 기존의 질서를 깨뜨리고 새로움을 추구하려는 '영웅적 멜랑콜리'가 김기림의 시에서 발견되는 반면, 무단의 시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김기림 시에 나타난 '지하실'과 '쓰레기'등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들이 오히려 구원의 의미로 승화하게 되고, 무단 시에 나타난 '동물'과 '숲'이라는 자연적 이미지는 오히려 그 자체의 의미와 상반되는 몰락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III장에서는 김기림과 무단의 전기 시에 나타난 멜랑콜리적 주체를 중심으로 비교한다. 상실 대상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출발하며 이러한 대상의 흔적과 결부된 감각적 이미지를 살펴봄으로써 두 시인 시에 내재한 멜랑콜리의 미학적 특성을 제시할 수 있다. 3-1-1에서는 김기림 시에 나타난 '푸른색'과 관련된 이미지를 통해 멜랑콜리적 주체의 내면적 특성을 살펴보았다. '푸른색'은 김기림 시의 멜랑콜리적 주체의 상실한 대상의 대체물로서 처음에는 자기의 감성적 정서를 감추기 위한 나타난다. 그런데 이러한 억제는 사후 무의식적 징후를 발생시킨다. 즉 화자는 끊임없이 '빈틈'을 채우고자 하는 욕망에 시달리게 되고, 이 과도한 채움은 화자의 내면적 분노를 유발할 수 있는 부작용을 지닌다. 이어서 치유의 불가능성을 내포된 '푸른색'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흰색'의 색채 이미지를 3-1-2에서 살펴보았다. 김기림 시에 나타난 '흰색'으로서의 이미지들은 화자를 끊임없이 침투하는 기억을 정지시킬 수 있는데, 결과적으로 상실 대상을 찾지 못한 주체는 표면적으로 냉담의 태도를 취하지만 실은 그의 우울이 더욱 심해지고 허무해진다.
한편 무단 시에서 나타나는 시적 주체의 멜랑콜리적 상실감은 원시적인 '어머니의 자궁'과 관련된다. 3-2-1에서는 시인의 내면을 전달한 시적 화자 '나'에 대한 중점을 두고 살펴보았다. 무의식 속에 상실된 자궁에의 기억은 시적 화자에게 오직 "따스함"이라는 감각으로만 남아있을 뿐이며, 무단 시의 화자는 그러한 원시적인 합일의 충만함을 연인과의 관능적 체험을 통해 다시 획득하고자 시도한다. 무단의 시적 화자는 연인과의 육체적 합일을 통해 나르시시즘의 만족을 얻었지만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자궁'에 대한 상실감은 여전히 멜랑콜리적 주체의 내면에 남아있다. 이어서 3-2-2에서는 연인과 헤어진 화자는 더 이상 욕망의 대상과 육체적 합일을 이루지 못하는 폐쇄성을 보인다. 이러한 과정에서 무단 시에 나타난 멜랑콜리적 주체의 기억은 운명론적인 기억의 선험성을 지닌다. 이것은 화자가 현재의 고통을 항상 과거의 고통과 혼재된 것으로 인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과거의 기억에 토대로 미래를 바라보는 비극적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김기림과 무단 시의 멜랑콜리적 주체는 모두 상실감을 극복하기 위한 나름의 시도를 지속하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한다. 김기림 시에서 화자의 과거 기억은 항상 반추적으로 나타나며, 이와 달리 무단 시에 나타난 운명론적인 기억은 선험적이다. 이러한 차이점은 또한 절망의 소용돌이에 빠진 무단의 시에서는 왜 보들레르나 김기림의 시에서와 달리 영웅적 멜랑콜리가 발생하지 않는지를 설명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