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의 목적은 1904년에 일본에서 일본인을 위하여 간행된 한국어 학습서인 《한어회화》의 표기와 음운론적 특징을 살펴보는 데 있다.
《한어회화》는 이 시기에 철도회사 사원이었던 무라카미 미쓰오(村上三男)에 의해 한국에서 철도에 종사하는 일본인을 위해 한국어 회화와 철도 업무와 관련된 내용을 담아서 편찬된 실용적인 한국어 학습서이다. 이 문헌에서는 근대국어 음운현상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표기:음성이 1:다(多), 다(多):1로 나타나고 혼기나 병기 등 다양한 표기 양상을 나타냈다. 《한어회화》의 특징으로 가나 전사 표기와 국어의 철자법이나 진행 중인 음운 변화에 대해 설명한 점을 들 수 있다. 전자를 통해 표기와 발음 사이에 괴리가 있는 국어에서 한글만으로 알 수 없는 현실 발음을 알 수 있다. 한편 후자는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일본어로 보다 국어에 가까운 소리를 표현하고 음운현상에 대해 설명한 것이다. 이와 같이 일본인 저자에 의해 일본어로 한글에 대해 설명하고 편찬된 본 문헌을 살펴봄으로써 한국인이 국어로 편찬한 자료를 연구하는 것과 또 다른 관점에서 국어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질 것이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한어회화》는 당시의 국어를 잘 나타낸 국어 자료로서 상세히 검토해 볼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여 본고에서는 《한어회화》의 표기와 음운현상에 대해 고찰함으로써 국어사 자료로서 《한어회화》의 특징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표기에 대해 살펴본 결과 한글:가나=1:1이 아님을 확인하였는데 그 원인으로 다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그 당시 표기의 기준이 없는 중세국어와 현대국어의 과도기에서 연철, 분철, 중철, 과잉 분철 등 여러 가지 표기가 혼재했다는 것이다. 둘째, 국어와 일본어의 음운 체계의 차이로 인한 것, 셋째, 국어의 음운 변화에 의한 것이다. 둘째와 셋째 원인으로 인하여 《한어회화》에서는 가나 전사 표기에 병기가 나타났다. 둘째에 대해서는 두 언어의 음운 체계의 차이를 두 가지 표기를 함으로써 보완하고 그 중간 소리를 나타내고 보다 원음에 가까운 소리를 표현하고자 했다. 한편 셋째의 경우 구형과 신형을 표기한 것으로 그 실현은 사람마다 다르고 선택적인 것으로 해석했다. 그래서 이와 같은 혼기나 병기 등의 표기는 본래의 표기와 발음을 중시하면서 당시의 흐름을 고려하여 현실 발음도 제시함으로써 한국어 회화서로서 보다 좋은 제시 방법을 모색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전사 자료를 활용하여 국어 음가를 알아보는 것은 언어에 따라 음운체계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완전히 그 발음을 전사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런데 《한어회화》에서는 병기라는 수단을 구사하여 그것을 되도록 극복하였다.
음운현상에 대해 살펴본 결과 《한어회화》에서는 처음으로 어휘가 나타날 경우나 본문에 같은 어휘가 몇 번 나타날 경우 한글 표기에도 가나 전사 표기에도 기본적으로 기저형을 우선 제시하고 그 다음에 표면형을 제시하는 경향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병기를 통해 기저형과 표면형을 나타낸 경우도 있었으나 이와 같은 표기 방식은 우선 기저형을 표기하고 본래 형태를 알고 표면형을 표기함으로써 음운현상에 의한 변화도 알 수 있게 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국어사적인 시각으로 보면 시대와 맞지 않는 표기도 나타나지만 그것은 국어에 대한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한국어 학습서로서 표면적인 것, 즉 현대적인 내용만 알고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 표기나 소리를 알고 근본적인 것을 이해하고 한국어를 공부할 수 있도록 제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가나 표기에 있어서 단일 표기와 병기라는 표기 방법의 차이를 나타냄으로써 당시의 현실 발음, 말하자면 음운현상의 적용을 나타냈다. 구개음화와 같은 경우 음운현상이 적용된 표기만을 단일 표기함으로써 당시 구개음화가 널리 확산된 상태였음을 나타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표기와 발음의 불안정성을 나타낸 것들에 대해서는 음운현상의 적용이 사람마다 어휘마다 달리 나타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와 같은 표기 방식은 음운변화 과정에 보이는 언어 실현 양상을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이 국어와 일본어의 음운적인 차이뿐만 아니라 당시의 국어의 양상을 감안하여 편찬되었다는 점에서 《한어회화》는 언어학적 양상을 보이는 국어사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