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생태계에서의 생물다양성은 지표면 생태계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 중요성이 간과되어왔다. 고하목(Bathynellacea)은 절지동물문 (Arthropoda), 연갑강(Malacostraca)에 속하는 분류군으로, 담수 및 기수의 지하수 환경에서만 서식한다. 이들은 어둡고 고립된 지하 환경에 적응하여 눈이 소실되고, 색과 무늬가 없는 작은 몸 크기를 가지며, 형태적 특징이 매우 단순화되는 수렴진화적 특성을 가진다.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고하목은 약 340여 종으로, 지표면 환경에 서식하는 다른 갑각류에 비해 이들의 다양성 및 분류학적 연구 수준은 매우 낮다. 특히, 한국과 몽골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대부분 형태를 기반으로 한 분류학적 연구만 이루어져 왔으며, 이들의 종다양성 및 계통학적 유연관계를 밝히기 위한 추가 분자 분석 연구가 필요하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형태와 분자 분석을 활용하여 한국 및 몽골산 고하목의 종다양성 및 계통관계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한국과 몽골의 23개 지역의 간극성 혼합대 (Interstitial hyporheic zone) 지하수에서 고하목을 채집하였다.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두 개의 파트로 구성된다: [Part I] 한국 및 몽골산 고하목의 계통분류학적 연구; [Part II] 나도고하과(Parabathynellidae)의 분자계통학적 연구 및 종 발산 시간 추정.
[Part I]의 목표는 계통분류학적 연구를 통해 한국 및 몽골에 서식하는 고하류의 종 다양성을 밝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총 32개 종의 형태 비교 분석을 수행하였으며, 한국 및 몽골산 고하류에 대한 최초의 유전자(CO1, 16S, 18S) 분석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로, 한국의 지하 간극수에서 고하과(Bathynellidae) 1 신종, 나도고하과 8 신종이 확인되었으며 이들 중 나도고하과 2 신종은 각각 새로운 형태학적 조합을 가지는 새로운 속으로 제안되었다. 한국산 나도고하과 16종의 18S rDNA 유전자서열을 이용한 p-distance 분석 및 Maximum Likelihood (ML) 분석은 기존에 한국에 알려진 5개 속과 새롭게 제안된 2개 속의 단계통 상태를 입증하였다. 현재 연구에서 몽골지역에 서식하는 고하류가 최초로 확인되었으며, 1종의 고하과 신종이 확인되었다.
[Part II]의 목표는 나도고하과의 지리적 분포와 계통유연관계를 조사하고, 한국산 나도고하과의 분자계통학적 위치를 추정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Part I]의 결과로부터 얻은 한국산 나도고하과 16종의 18S rDNA 유전자를 포함한 42개 서열을 이용한 분자계통학적 분석이 수행되었다. ML 및 Bayesian Inference (BI) 분석 결과, 한국산 나도고하과 7속은 곤드와나 그룹 내 별개의 두 분기군에 속하는 것을 확인하였다. 현재 연구를 통해 곤드와나 그룹 내 북아메리카 및 유럽 지역을 대표했던 지리적 분기군은 동아시아까지 그 범위가 확장되었다. 18S 유전자를 기반으로 한 분자시계 분석은 이들 두 별개의 분기군이 중생대 쥐라기 말에서 백악기 시대 사이에 분기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곤드와나 계통 내 두 계통군의 독립적인 진화는 이들의 공통조상이 과거 상당한 기간동안 지리적 격리를 겪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