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강동 6주가 만주에 있었느냐, 한반도에 있었느냐는 두 가지 학설을 문헌으로 강동 6주의 지명을 비교, 분석하는 것을 '역사 지리적(歷史地理的)'인 고찰이라 할 수 있다. 역사 지리적인 면에서 지명을 분석할 때 서로 경합하는 학설에 관한 사료가 각각 많이 있어서 서로 대치가 된다.
이러한 역사 지리적인 사료를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해당 지역의 경제적인 가치를 살펴보는 방법이 있다. 거란이 1~6차 전쟁을 통해 차지하고자 했던 지역의 경제적 가치를 분석하고자 한다. 즉, 강동육주의 '만주설'과 '한반도설'에 언급되는 지역의 경제적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살펴보는 것을 '경제 지리학적(經濟地理學的)'인 고찰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고려 서북계인 6주의 경제적인 가치를 분석해 보고 거란이 그토록 차지하고자 했던 6주의 위치를 고찰하고자 한다. 서북계 6주로서 철령과 개원 사이인 철주(鐵州)의 산들은 철 함유량이 많은 돌산이 많아 다른 이명으로 동산(銅山)으로도 칭한다. 또한 본계와 안산철강에서 나오는 철강은 2020년 요령성의 철강 총생산량인 7,609만 톤 중 73% 해당하는 생산량이 생산되고 있다.
요동반도의 영구는 192 里의 해안선이 있으면서 봄과 가을에 날씨가 따뜻하고 바람이 불면서 강수량이 적어서 해염(海鹽) 생산에 좋다. 『明經世文編』에 요동 지역 각 위(衛)에서 생산되는 소금 총량이 3,774,713근이고 그중에서 개주위(蓋州衛)에서 생산되는 일 년 총생산량이 225,726근이다. 요하 주변의 6주는 수수, 콩, 조 등의 곡물을 왕성하게 재배했다. 청나라 말기에도 수수의 수확량이 1무(畝)당 480근~720근 정도 생산할 수 있다.
서북계 6주에서 재배하는 콩은 대량으로 생산되고 대일 항쟁기 때에도 콩 부산물인 콩 깻묵을 영구에서 대량으로 일본으로 운반하였다. 이러한 환경은 말에게 필수적으로 필요한 영양소인 탄수화물과 단백질을 충분히 제공할 수 있다. 즉, 이 지역은 대량으로 말을 성장시킬 수 있는 말 농장의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국지강약재마(國之强弱在馬)'라 하여 나라의 강하고 약함은 말에 달려있다고 강조하듯이 말을 전략적으로 사육하는 중요한 환경을 제공하는 곳이 6주다. 여진족이 고려 서북계 6주와 요하[압록강:鴨淥江]에서 말을 키우면서 송나라에 매년 말 무역을 하였다. 송 진종(眞宗, 968~1022) 때는 여진이 무역으로 일 년에 만 필을 보내기도 하였다. 여진의 우수한 말들이 거란과 싸우는 송의 전투마가 되는 것에 위협을 느낀 거란의 聖宗이 여진족을 토벌하였다.
거란의 소손녕은 고려에 1차 침공으로 군사 시위를 통해 위협하였다. 그리고 송과 외교를 하지 않고, 고려가 압록강 주변의 여진족을 통제한다는 조건으로 서북계 280리 땅을 고려의 땅이라고 인정해주는 외교적인 협상 결론을 내렸다. 그 뒤에 고려의 땅이라 인정을 한 서북계 6주의 경제적 이익에 욕심을 낸 거란이 1차 협상을 반대할 명분으로 강조의 정변을 빌미로 성종이 직접 전쟁을 참여하면서 2차 침공하였다. 그리고 성종이 군사를 후퇴하면서 고려의 현종이 직접 조공을 바치는 무리한 외교적인 요구를 한다.
현종이 친조를 하지 못한다고 하자 3차 침공을 하면서 6주를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전쟁을 시작한다. 6주의 경제적 가치에 관해 인식할 때 거란이 왜 2~6차까지 막대한 거란의 사상자가 생겨도 계속 전쟁하는 이유를 알 수가 있다.
경제적인 면과 더불어 중요한 것은 6주의 남쪽 요동반도는 '군사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이다. 요동반도에서 묘도군도를 통해 등주로 가는 항로는 요동반도와 산동반도를 잇는 지름길 해로(海路)이며 풍랑이 없는 바닷길이다. 이런 해로의 확보는 송나라의 배후를 통제하는 교통로이다.
서북계 6주는 이러한 교통로의 중요한 위치인 요동반도를 지키는 입구 역할을 한다. 그래서 서북계 농경지 역할을 할 수 있는 '경제적인 필요성'과 군사적인 항로의 중심축이 되는 '군사 전략적인 가치'가 결국 거란이 고려를 침략하면서 6주를 요구하는 배경이 된다. 즉, 거란이 고려를 1~6차 침공한 배경에는 6주의 경제 관할권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구와 군사 전략적인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