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헌법 개정시 헌법 제32조 제1항 후문에 처음 도입된 적정임금 보장은 40여년이 넘게 특별한 관심을 받지 못하였다. 적정한 임금에 대한 우리의 열망은 경제개발에 막 착수한 1960년대부터 강력하였다. 이 시기부터 적정임금의 개념을 두고 생계비 보장과 생산성 임금제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었다. 노동운동에 대한 억압정책으로 노동조합이 스스로 적정임금을 확보하지 못하던 1970년대에는 대통령의 적정임금 지급 지시를 계기로 적정임금이 단순히 노사간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개입할 수 있는 개념이라는 점이 확인되었다. 이를 동력으로 1980년 헌법개정시 적정임금 보장이 헌법에 수용되었고, 여기에서 더 나아가 1987년 헌법 개정에는 최저임금제 시행도 추가되었다. 현행 헌법은 임금을 적정임금과 최저임금으로 구분하고 국가의 임금에 대한 양방향의 개입을 천명하고 있다.
그러나 임금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관심은 최저임금제에 집중되었다. 학계에서도 적정임금에 대해서는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는 수준' 정도라는 기초적인 개념만이 제시된 채 이를 구체화하는 해석기준이 마련되지 못했다.
한편, 국제적으로 ILO는 1919년 설립될 당시부터 "해당 시대와 국가에서 이해되는 합리적인 생활 수준을 유지하기에 적정한 임금을 노동자에게 지급해야 한다", "남성과 여성은 동등한 가치의 노동에 대해 동등한 보수를 받아야 한다"라는 임금의 지향에 관한 기준을 제시한 바 있고 필라델피아 선언이 이를 계승하였다. UN은 ILO의 이러한 노동기준을 수용한 국제인권선언을 채택하였고, 규범력을 강화한 사회권규약을 제정하여 이를 인권 차원으로 고양하였다. 우리나라도 비준한 이 사회권규약은 정당하고 유리한 근로조건을 향유할 권리가 있음을 선언하면서, 그 보수에 관해서 ① 공정한 임금, ② 어떠한 종류의 차별도 없는 동등한 가치의 노동에 대한 동등한 보수 및 ③ 규약의 규정에 따른 근로자 자신과 그 가족의 품위 있는 생활을 제공하는 보수를 보장할 것을 요구한다. 국제기준은 우리 헌법상 적정임금을 해석함에 있어 중요한 기준을 제시하였는바,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32조 제1항 전문의 근로의 권리에 "일에 대한 정당한 보수를 받을 권리"가 포함되어 있음을 밝히며 사회권규약 제7조의 취지를 확인한다.
국내외에서 제시된 임금의 적정성의 요소는 ① 생계비를 보장할 것, ② 인간다운 생활 수준을 보장할 것, ③ 당사자가 합의하여 정할 것, ④ 노사가 대등한 지위에서 교섭할 것, ⑤ 노동3권이 전제될 것, ⑥ 최저임금 이상일 것, ⑦ 노동의 양과 질에 부합할 것, ⑧ 경제적 안정, ⑨ 공정할 것, ⑩ 해당 시대와 국가에서 이해되는 합리적인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 것, ⑪ 동등한 가치의 노동에 동등한 보수일 것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 연구에서는 적정임금의 위와 같은 요소를 재구성하여 적정임금의 개념을 "평균직업인이 인간의 존엄을 향유하기에 충분한 수준으로서 당사자가 수용가능한 노동의 금전적 대가"라고 파악하였다.
적정임금은 단순히 노동자에게 더 많은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을 강변하는 개념이 아니다. 국가·사회적으로 사회정의를 실현하여 갈등 관리를 통한 사회의 지속가능성 보장, 사회적 기능의 원만한 작동을 통한 안정성 유지, 공동체적 지향 제시, 공동체에 대한 신뢰 및 연대감 형성, 다양성 유지, 공정한 경쟁 촉진 등의 가치를 가진다.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직업적 소속감, 일할 의욕, 책임 의식 및 자존감 고취, 경제적 안정 등의 의미가 있으며, 사용자의 경우에는 생산성 향상, 상호이해에 터잡은 노사협력 달성, 사회적 책임 이행 등의 의의가 있다. 적정임금은 이처럼 고유의 기능과 가치를 지니고 있어, 인간의 존엄성을 충분히 향유할 수 있게 함은 물론이고 사회의 지속가능성과 안정을 도모한다는 점에서 적정임금은 근로자의 생계 보장을 목적으로 하는 최저임금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이렇게 파악한 적정임금의 개념을 바탕으로 적정임금 보장에 적용되는 노동법적 기본원리를 인간의 존엄성 보장 원리, 평등원칙, 정당한 보상 원리, 민주주의 원리, 사회연대 원리로 파악할 수 있다.
첫째, 노동은 인간 삶의 다른 모습이고, 노동의 대가는 곧 인간의 삶에 대한 대우와 다를 바 없으므로 임금의 적정성은 인간의 존엄성의 충분한 향유를 보장한다. 헌법 제32조 제3항은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 규정은 단순히 근로조건의 최저한을 정하라는 취지 뿐 아니라 근로조건의 적정성을 법률로 정하라는 의미도 내포한다. 즉, 인간의 존엄성의 최저한 보장외에도 그 이상의 수준을 향유할 수 있도록 적정근로조건으로서의 적정임금의 기준을 제시할 국가적 의무를 부과한 것이다.
둘째, 노동관계는 사적 영역이지만 국가가 평등 확보를 위해 개입하는 대표적 영역이다. 임금은 핵심근로조건으로 평등원칙의 적용이 특별히 요구되며, 이에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주창되고 있다. 적정임금은 학력·경력·근속연수와 같은 속인적 요소가 아니라 개별 노동자가 수행하는 직무나 직능에 기반한 임금체계를 요구한다.
셋째, 정당한 보상의 원리는 임금이 노동의 객관적 생산가치 및 그 재생산비용 등에 상응해야 하며, 임금이 결정되는 과정이 정당해야 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 원리는 임금의 적정성은 실체적으로는 생산결과와 재생산비용적 요소를 고려하여 정당한 교환관계가 달성되어야 하고, 절차적으로는 노동자가 종속적 지위로 인해 불이익을 입지 않도록 당사자가 대등한 지위에서 결정하여야 한다는 점을 내용으로 한다
넷째, 의사결정 원리로서의 민주주의 원리는 적정임금의 보장에도 작용한다. 적정임금을 산정하고 이를 보장하는 과정에서 노동조합은 자신의 구성원인 노동자의 의사를 충실히 반영하여야 하며, 사용자는 노동자로 하여금 그 경영과정에 참여토록 하여야 한다. 한편, 임금의 적정성은 국가적 차원에서 국민의 생계와 삶의 질을 결정한다는 중요한 의미가 있으므로 국가는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적정임금의 지향점을 제시할 의무가 있다.
다섯째, "사회의존성에 근거한 책임의 확장"을 본질로 하는 사회연대는 임금에 있어서도 유효하다. 임금은 노동자 사이의 제로썸적 성격이 있으므로 격차확대에 대해 노동자들은 연대적으로 대응할 수 있고, 노동을 할 수 없는 상태에 대비한 사회보험제도는 그 물적 근간이 임금에 있으므로 적정임금을 산정함에 있어서는 생애적 관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원리는 인간의 존엄성 보장 원리로 다른 원리들의 지도원리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헌법상 적정임금은 헌법이 추구해야 하는 가치로서 열린 개념이다. 따라서 국가적, 산업적, 직종별, 개별 사업장별 적정임금이 존재할 수 있다. 각 차원별로 존재하는 혹은 결정되는 적정임금이 모두 일치할 수는 없으며, 그 산정대상이 되는 차원에 따라 고려해야 하는 요소나 결정과정이 천차만별일 수 있다. 그러나 헌법상 적정임금이 지향하는 가치는 어느 경우이건 동일하므로 기본원리는 모든 경우에 적용되어야 한다.
이러한 원리를 바탕으로 적정임금 보장의 실현구조는 크게, 대등결정원칙 확립, 노동자의 경영참여 확대, 국가의 관여를 통한 방식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적정임금의 보장을 실현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등결정원칙의 확립이다. 특히, 집단적 관점에서 노동3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여 노동조합이 충분히 교섭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노동3권의 자유권성을 회복하고, 교섭상대방인 사용자의 범위 실질화, 소수노조의 단체교섭권 보장, 교섭대상 및 쟁의행위의 목적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현재 기업별 교섭 관행을 초기업별 교섭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단체협약 효력확장제도의 적용을 확대하고 단체협약의 만인효 인정을 고려할 필요도 있다.
개별적 노동자의 대등교섭을 도모하기 위해 우선 차별금지의 법리를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기업의 벽을 넘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원칙을 실현해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에 대응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정보의 편재로 인한 불이익을 완화할 수 있도록 임금정보를 공개하고 이미 결정된 임금에 대해서도 사후적 검토를 할 수 있는 체계를 도입할 필요도 있다.
둘째, 민주주의 원리가 일터에서 구현될 수 있도록 노동자의 경영참여를 확대하여야 한다. 이를 통해 노사대등원칙을 강화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나아가 지역사회 구성원의 지위도 가지고 있는 노동자가 시민의 입장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이행의 방법으로서 적정임금을 지급하도록 촉구할 수 있다. 한편, 이익균점권의 지혜를 오늘날에 되살려 노동자의 기업에 대한 이윤배분을 요구함으로써 임금의 적정성을 담보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적정임금의 개념이 노자간의 이익분배 문제까지도 연결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모두가 진보의 과실에 균등하게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필라델피아 선언에서 확인된 바 있다.
셋째, 국가는 노사관계에 대한 개입을 자제하여야 하지만, 국가 역시 노동을 사용하는 계약의 당사자로서 이러한 지위를 활용하여 적정임금 보장을 선도하고 모범이 될 수 있다. 국가는 적정근로조건을 보장할 의무가 있으므로 적정임금에 관한 기준을 제시하여 민간영역에서 노사가 적정임금 보장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조정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이러한 조치들을 통해 국가는 적정임금 보장의 기본원리가 실현되는 구조를 마련하여 적정임금을 보장한다면 그것이 지닌 국가적·사회적 가치를 살려내어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데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